[서울=뉴시스] 이재은 기자 = “출퇴근 시간에 가뜩이나 막혀서 힘든데 지금은 주차장 도로나 다름없습니다.”
서울 서부지역과 경기지역을 잇는 핵심 찻길인 서부간선도로는 출퇴근 시간이 아닌 어느 시간에 가도 늘어서 있는 차들을 볼 수 있다.
목동 등 인구 밀집 지역을 통과할 뿐만 아니라 가산디지털단지, 상암동 등 업무지구와 주거지구를 잇는 주요 출퇴근 경로로, 하루 10만대 이상의 차량이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울시가 기존 지하차도를 지상 교차로로 바꾸는 평면화 공사를 시작하면서 교통혼잡은 더욱 심각해졌다.
서울시는 박원순 전 시장 재임 당시인 2013년 서부지하간선도로를 개통해 지하에는 유료 도로를 놓고, 지상부를 교차로와 신호등이 있는 일반 도로로 바꿔 보행길과 공원이 있는 공간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시는 2021년 9월 서부간선지하도로를 개통했고 2023년부터 영등포구와 금천구 구간 평면화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6월부터 오목교 지하차도를 폐쇄하고 신호등을 만들었는데, 이 때부터 그야말로 ‘교통지옥’이 펼쳐졌다. 시속 17.7㎞였던 평균 주행 속도가 7.9㎞까지 떨어진 것이다. 이는 성인 평균 달리기 속도인 8~10㎞에도 못 미친다.
당연히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안 그래도 막히는 구간에 도로를 줄여서 공원을 만든다는 것은 누구 아이디어냐”, “새벽 5시에도 막히는 도로가 정상이냐” 등 불만이 쏟아졌다.
서울시에 공식 민원만 355건이 접수됐고, 유선으로 접수된 민원과 관련 언론 보도 기사에 달린 부정적인 의견까지 합하면 6000건 이상이었다.
급기야 20대 남성이 지난달 29일 한 커뮤니티에 “오세훈 서울시장을 서부간선도로에서 떨어뜨려 죽이겠다”는 글을 작성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최악의 정체’라는 비판이 이어지자 서울시는 결국 백기를 들고 평면화 사업을 중단했다. 공사 중이던 오목교 지하차도를 추석 전까지 원상복구하기로 했다.
더불어 만성적인 교통 정체 해소를 위해 서부간선도로의 중앙 분리대를 축소하는 대신 4차로를 5차로로 늘리는 사업을 추진한다. 설치 예정이었던 오목교 등 17개소 신호 교차로도 전면 보류했다.
공사를 중단하고 원상 복구하는 데 따르는 매몰비용은 최대 10억원으로 추산된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3년 기본계획 수립 당시부터 보행친화와 녹지 확충을 중심으로 설계를 해왔지만 해당 계획이 현재 교통상황과 도시여건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 따라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사 전면 중단으로 혼란은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하지만 현장 상황을 전혀 헤아리지 않은 서울시의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계획은 2013년 박원순 전 시장이 했다면 실행은 2025년 오세훈 시장이 했다. 무려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난 6월 공사를 착수하기 전에 교통흐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시뮬레이션을 했다면 애초에 이런 혼란을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나 정책은 부작용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다.
서울시는 평면화 추진 여부를 2027년 완공 예정인 ‘광명~서울 고속도로’ 개통 이후 다시 검토한다고 했다. 대체 도로가 추가로 생겨 교통량이 분산되는 지를 분석해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서울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미비점을 철저히 보완함으로써 시민 불편을 줄이고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시민들의 조롱 섞인 비판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