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애니마. (사진 = 유니버설뮤직 제공) 2025.11.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거대한 유리창 너머에서 관객을 찬찬히 관찰하던 휴머노이드 ‘에바’는 고조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맞춰 돌연 오른손으로 ‘쾅’ 유리를 내려쳤다. 이후 유리는 거미줄 모양처럼 곳곳에 금이 갔고, 수만명의 열기는 그렇게 터져 나왔다. 대형 LED 화면 앞에 쏟아져 내리는 굵은 빗줄기마저 특수효과로 느껴질 만큼, 영상과 사운드가 압도적이었다.
지난 6월15일 경기 과천 서울랜드에서 열린 대형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축제 ‘2025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이하 2025 월디페)에선 현 세계 최강 DJ인 이탈리아계 미국 DJ 겸 프로듀서 마테오 밀레리(Matteo Milleri·36)가 이끄는 솔로 프로젝트 애니마(Anyma)의 첫 내한공연이 단연 화제였다.
유럽 기반의 디지털 영상 아티스트 알레시오 드 베키(Alessio De Vecchi)와 자신의 멜로딕 테크노 앨범들을 기반으로 한 다감각적 경험을 녹여낸 ‘제네시스(Genesys)’ 세계관의 영상은 콘서트, 영화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드는 몰입형 판타지의 ‘사이버네틱 오페라’였다.
인류, 인공지능(AI)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1시간 남짓 생생하게 압축됐다. 양자역학을 비롯해 평소 물리적인 것에 대한 고민에 몰두하는 애니마답게, 영상은 가상현실(VR)의 인위적으로 분리된 경험이 아닌 확장된 현실의 그 무엇을 관객에게 보여줬다.
애니마가 왜 미국 라스베이거스 내 우주선처럼 내려 앉은 구(球) 모양의 랜드마크인 스피어(Sphere)에 레지던시(Residency) 아티스트로 설 수밖에 없는지 단번에 수긍이 된다.
미국 거물 록밴드 ‘데드 앤 컴퍼니(Dead & Company)’와 ‘이글스(Eagles)’, 아일랜드 거장 록밴드 ‘유투(U2)’에 이어 스피어 무대에 선 그는 이곳에서 공연한 최초의 일렉트로닉 뮤지션이다. 작년 말 8회 공연 13만장 티켓이 단숨에 팔려나갔다.
음악뿐 아니라 음향, 레이블 등에서도 큰 성과를 낸 DJ 듀오 ‘테일 오브 어스(Tale of Us)’ 출신인 애니마에게 음악은 주된 여러 요소 중 하나다. 우리가 느끼는 현실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현실을 선사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과 창작력은 고유성을 가진 최적의 시청각 합성으로 나아간다. 음악, 영상이 자신을 내세우거나 각각 분리되지 않고 응집력 있게 뭉쳐 도달불능점에 도착해 새로운 현실을 빚어낸다. 애니마는 이런 작업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 양자역학 등도 공부했다.
다음은 안주하지 않고 한국 등을 오가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애니마와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그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OST ‘골든’ 등의 작사·작곡으로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 다수 노미네이트된 한국계 미국 작곡가 겸 가수 이재(EJAE·김은재)와도 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애니마 첫 내한공연이었던 '2025 월디페' 현장. (사진 = 비이피씨탄젠트 제공) 2025.06.16.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지난 6월 월디페로 첫 내한공연했을 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압도적인 영상 연출 앞에서 당일 쏟아진 비도 특수효과처럼 보였는데요. 아울러 전 원래 일렉트로닉 음악은 혼자가 듣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그날은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장르의 음악을 같이 듣고 즐겨야 하는지도 깨달았습니다. 그날 공연은 어떠셨나요?
“정말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관객들과 하나의 창의적인 언어로 연결되는 것은 저에게 매우 중요하고 강력한 경험이에요. 그날 그 현장에 계신 모든 사람들이 완전히 집중해서, 하나로 연결되어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한국에 다시 오게 돼 매우 설렜습니다.”
-제네시스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형 로봇 ‘에바’가 인공 의식에서 지성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는 과정을 기록해오셨는데요. 최근 화두인 AI 시대와 맞물리며 다양한 성찰과 고민도 안겨줬고요. 음악 산업의 분기점이 된 프로젝트라고 보는데, 애니마 씨에겐 이 프로젝트가 어떤 분기점이 됐나요? 한 인터뷰에선 이 프로젝트를 성료하신 뒤 해방감을 언급하시기도 하셨는데요.
“제네시스 프로젝트는 창조적 변화의 여정이었습니다. 평생 관심을 가져온 SF, 게임, 기술 등에서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완성될 때까지 이어갔죠. 우리는 지금 매우 큰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고, 이 프로젝트에서 탐구한 기술과 인간의 교차점은 AI 혁신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프로젝트가 세상에 공개된 뒤 사람들이 그 주제에 대해 성찰하는 걸 보며 해방감을 느꼈어요. 이 이야기가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과정 또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열린 결말인데요. 그런 결정을 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에 수긍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물리학과 양자학을 공부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어느 정도 공부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생각해보면 일렉트로닉 음악도 물리학, 양자학과 연결이 돼 있잖아요.
“물리학과 양자역학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었습니다. 에너지, 공명, 상호작용 같은 개념을 이해하는 게 중요했죠. 이런 아이디어들이 제가 사운드와 공간을 생각하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퀸텀(Quantum)’ 챕터는 양자컴퓨팅과 AI 같은 기술적 돌파구와 그들이 인간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열린 결말로 남기는 것이 자연스러웠어요. 이 시스템들처럼 언제나 새롭게 발견할 여지가 있으니까요.:
-라스베이거스 스피어 공연은 여전히 회자됩니다. 공연장의 물성이 당신의 공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월디페는 야외 공연장이었잖아요. 당시 공연의 비주얼 구현에 공연장의 형태가 상당한 영향을 줄 거 같은데요. 야외 공연에선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몰입감을 구현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조심히 해봅니다.
[서울=뉴시스] 애니마. (사진 = 유니버설뮤직 제공) 2025.11.09.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공연마다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게 콘텐츠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스피어 공연은 제 커리어에서 가장 큰 도전이자 보람 있는 작업 중 하나였어요.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된 몰입형 공연장이었지만, 그와 같은 몰입감을 다른 방식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축제나 DJ 세트처럼 규모가 작은 무대에서도 관객이 감정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쇼를 설계하죠. 어려움이 있지만 그만큼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흥미로움이 있습니다.”
-이번 제네시스 3부작 프로젝트는 특히 음악을 만드는 작법이 서사와 비주얼 구현에 철저히 복무하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멜로딕 테크노 장르’의 정점 같기도 하고요. 이번 프로젝트의 사운드가 발전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사운드와 비주얼의 긴장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해요.
“사운드는 세 앨범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진화했습니다. 애초에 3부작으로 계획한 것은 아니었고, 서사를 확장해 나가다 보니 완성된 형태에 이르렀죠. 협업자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제 스타일이 확고히 자리 잡는 걸 느꼈습니다. ‘제네시스’ 이후가 저 자신에게도 매우 기대됩니다. 사운드와 비주얼은 항상 동시에 구상하기 때문에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예요. 두 요소는 분리될 수 없고, 하나의 이야기로서 서로를 강화합니다.”
-내년 4월엔 미국 대형 음악 축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트 페스티벌’에 스페셜 출연자로서 신작을 초연하시죠. 관련해 힌트를 주신다면요.
“자세한 내용은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분명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드릴 겁니다. 여전히 같은 세계관과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한 단계 더 발전된 형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세상에 공개하게 도 무척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재와 함께한 신곡 ‘아웃 오브 마이 보디(Out Of My Body)’가 곧 발매(발표 일자는 미정)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협업의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항상 새로운 방식의 협업을 찾고 있습니다. 현재도 몇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솔로문(Solomun)과 함께 신곡 ‘틸 아이 다이(Till I Die)’도 작업했고요, 이재와 작업한 새로운 곡도 곧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