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정진형 건설부동산부 기자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이번에 공급 정책을 발표했는데 칭찬도 비난도 없는 걸로 봐서는 잘한 것 같습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정책에 관한 질문을 받은 이재명 대통령의 답변 중 한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은 지금까지 지표로 보면 성공적으로 시장에 먹혀들어 가는 분위기였다. 정부 출범 초 가파르게 오르던 서울 집값 상승률은 6·27 대책 발표 후 한국부동산원 통계로 보면 소수점 둘째 자리 수준까지 관리되고 있다. 1만건을 웃돌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도 3000건대로 감소한 상태다.
이는 첫 단추 격인 6·27 대출 규제 효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주택담보대출(주담대) 6억원 제한을 비롯해 실거주 의무를 강화해 전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를 막는 조치로 인해 서울과 수도권 주택시장이 관망세로 들어선 것이다. 다만 잘 꿴 첫 단추에 이어진 두 번째 단추 격인 공급 대책에 대해 시장에선 걱정이 앞선다.
9·7 대책의 핵심 내용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도의 시행 사업부터 의문부호가 붙는다. LH 부채는 올해 170조원에서 2027년에는 219조5311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택지를 조성해 민간에 매각해 손실을 보전하고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유지하던 LH가 과연 막대한 돈이 드는 시행 사업을 감당해 제때 주택을 공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더욱이 민간 건설사가 설계와 시공을 맡게 해 주택 품질을 끌어올리겠다는 ‘도급형 민간참여’ 사업 방식도 건설업계에선 회의적 반응이 앞선다. 공공 사업은 민간 아파트보다 수익성이 낮은 데다가 최저 입찰제로 인해 특화 설계나 자재 사용이 제한된다. 공사비 산정 방식이나 입찰 구조가 그대로인 상황에서 대형 건설사가 참여하는 ‘LH 래미안’ ‘LH 자이’가 현실성이 있느냐는 것이다.
도심 주택 공급 대책으로 제시한 공공 도심복합개발 시즌2, 유휴부지 자투리땅 활용도 이전 정부에서 시도했지만 지지부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 1만호 공급을 목표로 했던 군 골프장 노원구 태릉CC는 문화재 관련 협의에 주민 반대 등 걸림돌이 속출하며 목표 물량이 6800호로 줄었고, 이마저도 5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인허가 절차를 개선하고 용적률 규제를 풀어 사업성을 높이겠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나 속도감 있는 주택 공급이 가능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고강도 대출 규제로 시간을 벌었지만 후속 공급 대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서울 집값도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한국부동산원 9월 둘째 주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8일 기준)을 보면 서울 아파트값은 0.09% 상승으로 전주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특히 마포·성동·광진구가 상승률 상위 1~3위를 싹쓸이하는 등 한강벨트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공급 대책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 수요 억제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 규제지역 LTV(담보인정비율) 40% 강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권한 확대 등이 9·7 대책에 포함된 것 역시 추가 규제의 포석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규제-집값 상승-규제가 꼬리를 물다가 부동산 정책을 실패한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발표한 공급 대책을 시간표에 맞춰 얼마나 빠르게 실행하느냐에 달렸다. 여소야대 였던 윤석열 정권과 달리 이재명 정부는 범여권 188석의 압도적 거대 의석 기반이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대책이 빠르게 입법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실제 9·7대책은 상당 부분 특별법 제정이나 법 개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기왕 발표한 공급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한다면 시장의 우려를 불식하고 ‘잘 했다’ 칭찬 받는 날이 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