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선정 기자 = 권력의 가장 은밀한 지점에는 늘 가족과 측근이 있다. 정권이 바뀌어도 비선은 형태만 달리해 다시 등장했고, 공적 권력은 사적 이해와 맞물리며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었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영부인 지위 남용’ ‘국정농단’ 사태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영부인이 ‘V0’라 불리던 때부터, 지금의 상황은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김 여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부터 자신을 권력의 주체로 인식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곤 했다. 강직한 법조인이라는 이미지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신인 정치인 윤석열에게는 기반이 없었다. 그 빈자리를 김 여사가 자신의 물적 자원과 인적 네트워크로 채웠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남편과 자신의 권력을 동일시하게 됐을 수 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같은 말은 그래서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스스로를 권력의 일부로 인식한 심리의 표현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 태동한 비선 권력은 단순한 욕망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행사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의 여러 의혹들을 수사하는 특별검사팀은 김 여사가 영부인 시절 기업인으로부터 고가의 명품 목걸이와 시계 등을 수수했고, 그 대가로 사업상 편의나 인사 특혜를 주도록 영향을 줬다고 의심하고 있다. 대가가 있었는지를 차치하고서라도, 공여자의 상당히 구체적인 진술이 나온 만큼 영부인의 지위로 이익을 얻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남편을 등에 업은 권력은 곧 사적 거래의 수단이 되었고, 영부인의 지위는 국가 권력과 개인적 이해가 뒤섞이는 통로로 변질됐다.
문제는 이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남용은 법 사각지대에서 책임을 피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 사건이 있다.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로, 모종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전제된 선물을 받았음에도 대통령 배우자의 법적 처벌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됐다. 이같은 허점은 지금도 김 여사의 방어 논리가 될 수 있다. 물증이 확실한 뇌물 사건에서도 윤 전 대통령과의 공모 여부가 밝혀지지 않으면 김 여사의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책임없는 권력의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비선 권력의 폐해는 정권의 이름만 바뀌며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 과거 대통령 친인척 비리, 노무현 정부 시절 불거진 가족 논란,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까지.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통령 가족과 측근의 권력 사유화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였다. 이번 특검 수사 핵심은 단순히 김 여사 개인 비위를 파헤치는 것에만 있지 않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과 사적 이해가 얽혀 권력을 사유화하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고, 제도적 보완을 모색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