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예지. (사진 = 이벤팀라이브코리아 제공) 2025.08.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노래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은유다.
예컨대, 망치를 가지고 억압의 장벽을 무너뜨리겠다고 이야기한다고 치자. 그 자체만으로는 미약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음악에 실릴 때, 부당한 사회에 맞설 수 있는 우아한 경고장이 된다. 개인 내면에 천착하는 대중음악에서 이런 수사학은 핍진성(逼眞性)을 획득한다.
서울·런던·뉴욕에서 장르·언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한국계 미국 DJ 겸 프로듀서 예지(32·이예지·Yaeji)는 첫 정규 음반 ‘위드 어 해머(With A Hammer)'(2023)를 비롯한 자신의 음악들로 이런 사례들을 수없이 증명해왔다.
최근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을 통해 한국계 미국 뮤지션들에 대한 재조명이 분주한데, 예지는 이미 한국계 미국 뮤지션들의 혼종의 매력을 증명한 대표적 뮤지션이다.
싱어송라이터 혹은 비주얼 아티스트로도 불리는 예지가 오는 25일 오후 8시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SOL트래블홀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 ‘예지 라이브 위드 어 해머 아시아 투어 ’25(YAEJI – LIVE WITH A HAMMER ASIA TOUR ’25)’를 펼친다. 예지가 단독 내한공연하는 건 2019년 8월1일 동 예스24라이브홀 무대 이후 처음이다.
미국 뉴욕 퀸스 플러싱 출생인 예지는 서울, 도쿄, 애틀랜타, 뉴욕 등 다양한 도시에서 자란 다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장르와 언어를 넘나드는 독자적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하우스, 힙합, 재즈, 인디록, 전자음악 등 여러 장르의 요소를 혼합한 감각적 사운드, 한국어와 영어의 유기적 혼용, 속삭이듯 흐르는 보컬이 그녀만의 시그니처다.
2017년 발표한 ‘레인걸(Raingurl)’과 ‘드링크 아임 시핑 온(Drink I’m Sippin On)’ 등 내성적인 댄스 플로어 지향 트랙들로 일렉트로닉 신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예지는 이후 찰리(Charli) xcx의 앨범 참여를 비롯 삼파(Sampha), 두아 리파(Dua Lipa), 로빈(Robyn), 오혁(혁오) 등과의 협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서울=뉴시스] 예지(YAEJI) 내한공연 포스터. (사진 = 이벤팀라이브코리아 제공) 2025.08.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2020년 믹스테이프 ‘왓 위 드루(WHAT WE DREW) 우리가 그려왔던’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같은 해 팩-맨(PAC-MAN), 삼성, 헤븐 바이 마크 제이콥스(Heaven by Marc Jacobs) 등과의 협업으로 상업 영역까지 확장했다.
영국 BBC의 신인 선발 프로그램 ‘사운드 오브(Sound of) 2018’ 롱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2022년에는 미국 최고 권위의 음악 평론 피치포크(Pitchfork) 선정 ‘미래의 음악을 이끌 25인의 아티스트’에 포함됐다. MoMA PS1, 서펜타인 갤러리(Serpentine Gallery), V&A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 기관에서도 초청을 받았다.
예지의 음악은 흔히 ‘클럽 사운드’라고 불리지만, 단순한 댄스 뮤직의 카테고리에 머물지 않는다. 감정적인 멜랑콜리 코드와 반복적인 하우스 패턴, 재즈적 여운이 감도는 텍스처를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음악 평론가들은 이를 “내향적인 클럽 뮤직”, “속삭이는 팝”, “감성 전자음악” 등으로 표현한다. 관객의 신체와 감정 모두를 동시 자극하는 사운드로 평가하는 것이다.
보컬은 노래와 랩 사이를 유영하듯 흐르며, 한국어 가사는 음절의 각과 질감을 살린 리듬감을 전달한다. 예지는 “한국어는 소리적으로 가장 시적이고 아름답다”며 단순한 의미 전달보다 ‘소리 그 자체의 감각’을 중시해 왔다.
피치포크, 롤링스톤 등 유력 매체의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된 ‘위드 어 해머’를 기반으로 삼은 ‘위드 어 해머 라이브 쇼’는 라이브 보컬과 안무, 몰입형 시각 연출이 어우러진 3막 구성의 무대다. 워싱턴포스트는 “몰입적이며 부드럽게 정화되는 경험”이라 평가했다. 피치포크는 ‘2023년 최고의 공연 중 하나’로 꼽았다.
이번 서울 단독공연은 예지의 비주얼 디렉션과 음악적 감수성이 결합된 라이브 무대로 꾸며진다. ‘위드 어 해머’ 수록곡을 중심으로 대표곡과 최신곡을 아우른다. 사운드와 조명, 무대 연출 전반을 예지가 디렉팅하는 몰입형 예술 경험을 예고했다. 다음은 내한공연 전 그와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우선 예지 씨의 2019년 첫 단독 내한공연을 기억합니다.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정말 주술적이었던 새로운 경험이었는데요, 당시 당신은 ‘외국에서 공연을 많이 했지만, 이렇게 대화하는 느낌이 드는 건 처음’이라며 감격했었습니다. 그 때 공연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고, 6년 만의 단독 내한공연인 이번 무대에 대해선 어떤 기대감을 갖고 있나요?
[서울=뉴시스] 예지. (사진 = Dasom Han 제공) 2025.08.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한국에서 공연하는 것은 제게 항상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한국인이고, 제 가사의 일부-때로는 대부분을-한국어로 썼기 때문이에요. 또한 제 가족이 있고, 제가 자란 곳이기도 해요. 처음에는 미국 친구들에게 가사의 의미를 숨기려고 한국어로 가사를 썼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그 가사에 공감하고, 특히 한국에 있을 때 더 깊이 공감받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동시에 잘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ㅎㅎ”
-그 사이 당신에게 가장 많이 변화된 부분은 무엇인가요? 음악적, 개인 삶 양쪽 측면에서 모두요. 그런 변화들이 이번 공연에 반영된 게 있나요? 아무래도 공연 타이틀에도 들어가 있는 첫 정규 앨범 발매가 큰 영향을 줬을 거 같은데요.
“저는 9년 전에도, 음악을 만들기 전에 먼저 케이시 예지 리(Kathy Yaeji Lee)로서의 자신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변하지 않았어요.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저는 지난 몇 년간 많이 성장했어요. 30대에 접어들었고, 세계를 여행했고, 가족과의 관계가 변했으며, 정말 아름다운 친구 관계를 갖게 됐죠.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저는 성실하게 그리고 유기적으로(자연스럽게) 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것이 제 음악에 투명하게 반영돼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까지도 음악 만들기는 여전히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2023년 발표한 정규 1집 ‘위드 어 해머(With A Hammer)’는 예지 씨의 내면의 감정과 분노를 해체하는 과정을 담은 앨범이죠. 이 앨범을 만든 이후 당신의 분노는 없어지고 사랑만 남았다고 했었는데, 그 남은 사랑은 여전히 유효한가요?
“저는 ‘위드 어 해머’가 어떤 의미에서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분노에서 시작된 것이 어느 시점에서 사랑으로 변모했지만, 그 사랑도 결국 다른 것으로 변할 거예요. 그래서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저는 그 감정을 여전히 믿고 있고, 사랑이 남기를 희망해요. 하지만 삶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선형적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기쁨과 슬픔을 반복하며 살아가죠.”
-당신의 망치 캐릭터 ‘해머 리’는 개인적으로 제 역할을 많이 했다고 보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당신의 노래를 들으면, 노래는 가장 쓸모 있는 무기를 은유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개별적인 기억과 거기서 비롯된 트라우마에 대한 방어기제로 억압을 사용하지 않고, 이 무기로 거기에 맞서는 쾌감을 선사하죠. 이런 해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해석 정말 좋네요. 그리고 제 음악 창작 실천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 시점에서, 음악 창작이 제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리고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하는지 깨달았어요. 아마도 전업 음악가가 아니더라도 음악을 만들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음악은 제 자신을 마주하고 감정을 처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에요. 반드시 말에 얽매이지 않고요. 제가 자신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된 거죠. 해머와 관련 다가온 큰 순간은 제 인생에서 분노를 완전히 표현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락다운 ㅇ전 까지는요. 그 깨달음은 제가 감정을 억압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서, 제가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느끼거나 사랑하는 사람들이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것은 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분노는 망치의 형태로, 제 분노가 물리적 형태를 가진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방법이 됐고, 그 다음에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라고 묻을 수 있게 해줬죠.”
[서울=뉴시스] 예지. (사진 = Dasom Han 제공) 2025.08.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예전 인터뷰에서 한국어는 좀 더 추상적이고 시적인 표현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는데 한국어가 포함된 노래가 미국 차트 상위권에 포함되는 이 시점에서 한국어에 대한 또 다른 질감이나 특징에 대해 느낀 게 있나요?
“이제 저는 언어 자체에 대해 덜 생각하게 됐고, 소리가 느낌이며 음악은 말없이 말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최근에 제가 가장 흥분되는 부분입니다.”
-정규 1집은 서태지, 이정현 씨로부터 영감을 받기도 했다고 하셨습니다.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한국 뮤지션이 있다면요? 해외 뮤지션들의 영향도 있다면 그 분들의 이름을 거명해주셔도 좋습니다.
“혁오를 언급하고 싶네요. 그들은 제 친구들이고, 최근에 함께 작업하는 시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우리는 같은 나이이고, 한국에서 다른 K-팝 뮤지션들과 같은 세대에 성장했어요. 우리 길은 매우 달랐지만, 개인적과 음악적 측면에서 모두 그들과 공감할 수 있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해요. 저에게는 정말 특별한 일이에요. 왜냐하면 자라며 한국 친구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은 저와 마찬가지로 진심 어린 것이며, 그 점이 제게 영감을 줘요-그 덕분에 조금 덜 외로움을 느끼게 돼요.”
-K팝 대세 그룹 ‘에이티즈(ATEEZ)’와 협업(에이티즈 12집 타이틀곡 ‘인 유어 판타지(In Your Fantasy)’ 리믹스 싱글 작업)도 인상적이었어요. 에이티즈와 작업은 어땠나요? 당신에게 K-팝은 어떤 매력으로 다가갑니까?
“에이티즈와 협업은 정말 훌륭했어요. 그들의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그들은 매우 친절하게 맞아줬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편안하게 느끼게 해줬어요. K-팝 사무실에 들어가거나 K-팝 아티스트와 직접 협업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만남은 정말 달콤한 경험이었어요. 그들은 제가 원하는 어떤 음악적 표현도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도록 해줬어요. 어릴 적에는 K-팝을 찾아 듣지는 않았지만, 한국 어디에서나 K-팝이 흘러나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 귀에 들어왔어요. 당시 저는 세계 다른 지역의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K-팝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죠. 현재 K-팝이 미치는 영향력을 보면 여전히 놀랍고 충격적이에요. 정말로 영향력이 엄청나고, 그 힘이 커질수록 그 책임감 뒤에 더 많은 의도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K-팝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통해 제 예술성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더 기대하고 있습니다.”
-싱글 ‘뻔데기’ 뮤비에 엄정화 씨가 ‘테크노 마녀’로 출연한 것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곡과 뮤비를 만드는 데 모티브가 된 건 무엇이며 엄정화 씨의 출연이 왜 필요했습니까? 엄정화라는 아티스트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서울=뉴시스] 엄정화. (사진 = 예지 '뻔데기' 뮤직비디오 캡처) 2025.08.1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이 프로젝트는 제가 오랫동안 존경해온 감독 앤드루 토마스 황과 함께 작업했습니다. 그를 통해 제가 동아시아 디아스포라 일원임을 이해받고 대변받는다는 느낌이었어요. 그를 한국으로 초청해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아름다웠고, 실제로 그분이 한국에서 촬영하자고 제안하셨습니다. ‘뻔데기’는 아마도 아시다시피 제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 추억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촬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엄정화 님은 정말 친절한 분이에요. 그분은 제 DJ 공연 중 하나에 참석해 제 세트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셨고, 저는 그분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그 후로 연락을 유지해왔고, 제 뮤직비디오에서 이 역할을 맡아주실 수 있는지 물었을 때 기꺼이 동의해주셨어요. 결국 우연히 계획되지 않은 특별한 순간이 됐어요.”
-이번 콘서트는 라이브 보컬과 안무, 몰입형 시각 연출이 어우러진 3막 구성의 무대라고 소개하셨는데요. 라이브 공연 외 볼거리, 즐길거리가 많아진 시대에 라이브 공연을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위드 어 해머’를 통해 제 라이브 공연에 대한 관점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음악이 완성되고 발매될 무렵, 저는 앨범을 시작하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내 분노가 나를 통과할 때 어떤 모습일까?’ 음악이 발표됐을 때조차 그 답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이 앨범과 함께 투어를 다니며, 이 앨범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분노가 다른 것으로 변모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나와 공감하는 청취자들과 물리적 공간에서 함께 있고, 서로 소통하는 것-우리는 서로의 거울이기 때문에-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예지 씨는 진정한 몰입 상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의 몰입을 위해 즐겨 쓰는 장치가 있다면요? 당신이 최고로 몰입한 경험이 있다면요?
“우리는 모두 작은 벽을 세우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맞죠? 그리고 몇몇 사람들은 그 벽을 내려놓는 방법을 더 잘 알고 있죠. 하지만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벽을 세우고, 작은 규칙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 벽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그곳에 있을 때-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진짜 모습으로 그곳에 있는 것을 볼 때-그건 드물고 아름다운 순간이에요. 때로는 제 라이브 공연에서 우리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요. 때로는 혼자 음악을 만드는 걸 좋아해요-왜냐면 제가 너무 민감하고 내성적이라서 프라이버시가 흐름에 들어갈 수 있게끔 도와주니까요-하지만 진정으로 몰입하는 것, 그게 무엇이든, 우리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서 방어막을 내려놓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요.”
-정규 2집도 준비 중이신가요? 만약 그렇다면, 공유해주실 수 있는 정도로 힌트를 주신다면요.
“클럽에 가는 것을 다시 즐기고 있어요. 클럽 음악을 더 많이 만들었지만, 지금은 클럽 음악이 아닌 음악도 만들고 있어요-그래서, 누가 알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