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배요한 기자 = 6월 이후 가파르게 상승하던 국내 증시가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동력을 잃고 박스권에 갇혔다. 특히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잔고가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시장의 경계감도 높아진 상황이다.
증시가 지지부진한 배경에는 세제개편안의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개편안에는 ▲상장주식 대주주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 50억원→10억원 하향 ▲증권거래세율 0.15%→0.20% 인상 ▲법인세율 구간별 1%포인트 상향 ▲배당소득 분리과세(최대 35%) 도입 등이 담겼다.
세제개편안 발표 다음 날, 코스피는 4% 가까이 급락했다.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배경엔 대주주 양도세 강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영향이 컸다. 특히 분리과세 제도는 요건이 까다롭고 세율도 당초 예상했던 20%(최고)보다 높아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는 배당 성향이 40% 이상이거나 배당 성향이 25% 이상이면서 최근 3년 평균 대비 현금배당이 5% 이상 증가한 기업에 한해 분리과세 혜택을 부여하겠다고 밝혔지만, 증권업계는 이를 충족하는 상장사가 전체의 10%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질적 수혜 종목은 350개도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기대했던 외국인 자금 유입이 되레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을 둘러싼 정책도 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개편안 발표 직후 거센 개인투자자 반발에 여당은 ’50억원 기준 회귀’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대통령실이 원안 유지를 시사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 정책 기준이 50억원과 10억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면서, 투자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런 가운데 증시의 활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거래대금은 눈에 띄게 줄었다. 세제개편안 발표일인 지난달 31일 16조4556억원이었던 코스피 거래대금은 8월 14일 기준 10조2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공매도 잔고도 고공행진 중이다. 11일 기준 유가증권시장 공매도 잔고는 10조2327억원으로 연중 최고치이자 1년 9개월 만에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공매도 잔고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주가 하락을 예상하는 투자자들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증시 상승 탄력이 유지되려면 정책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이 계속되면 시장은 회복되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세제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은 어떤 결정이 나오든 장기화되선 안된다. 골든 타임을 놓치면 정책 효과는 아예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