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백일섭. (사진=백일섭 측) 2025.08.1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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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재경 기자 = 데뷔 60년차 배우 백일섭(81)이 ‘신예 유튜버’로 변신했다.
그는 지난 6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유튜브 채널 ‘꼬꼬할배 백일섭’을 열었다. 채널명은 제작진이 아닌 백일섭이 직접 지었다.
“‘꽃보다 할배’ 땐 70대였죠. 그땐 ‘꽃할배’란 별명이 좋았는데, 이제 80대니까 좀 쑥스럽더라고요. 그래서 꽃 대신 닭 ‘꼬꼬’로 했어요. 예전에 ‘컨츄리꼬꼬’도 있었잖아요.”
절친 가수 남진과의 추억 토크가 담긴 쇼츠 한 편이 조회수 360만 회를 돌파했고, 호떡 먹방·낚시 일상을 담은 영상도 수십만 회를 기록 중이다.
유튜브 조회수가 잘 나온다는 말에 그는 특유의 정겨운 웃음을 지었다. “아이, 더 나와야 돼. 헤헤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꼬꼬할배’ 백일섭을 단독으로 만났다. 인터뷰 도중, 시민들이 힐끔 볼 때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유튜브는 내 인생 노트”[서울=뉴시스] 백일섭. (사진=유튜브 채널 '꼬꼬할배 백일섭' 캡처) 2025.08.1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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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섭이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연예계 생활 60년 동안 내가 혼자 진행한 건 거의 없었거든요. 초창기엔 사회도 보고, 라디오 DJ도 했죠. 그런데 나이 먹으니 그 재미도 없어지더라고요.”
“드라마만 하다 보니 대본대로만 외워서 표현하게 되고, 터놓고 말할 기회가 없었어요. 저는 사람을 말이 아니라 눈으로 사귀거든요. 그러다 보니 말은 점점 줄고, 입이 굳더라고요.”
유튜브는 그의 화법을 바꿔놓았다. “말이 늘었어요. 하고 싶은 얘기를 표현하게 됐죠. 남들은 유튜브를 자서전이라고 하는데, 저는 ‘인생 노트’라 부르고 싶어요. 살아온 이야기를 유튜브에 남길 생각입니다.”
그의 채널에는 꾸밈없는 소박한 일상이 담긴다. 30년 만에 찾은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고, 용문천년시장을 걸으며 상인들과 대화한다. 방송에서 보기 힘든 솔직한 고백과 후배·동료들과의 농담이 이어진다.
“힘든 거 없고, 재밌어요. 그냥 할 수 있는 대로 자연스럽게 해보자는 거죠. 앞으로도 재미있는 걸 찾아가야죠.”
연기 쉬지만, 은퇴는 없다[서울=뉴시스] 1960년대 방송에 출연한 젊은 시절의 백일섭(위), 영화 '평양랭면'(2021)에 출연한 백일섭. (사진=유튜브 채널 'KTV 아카이브' 캡처, 한국영상자료원) 2025.08.16.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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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섭은 유튜버로 바쁘게 지내고 있지만, 연기 활동은 뜸하다.
2021년 단편영화 ‘평양랭면’에 주연으로 출연했을 뿐, TV 드라마는 2014년 JTBC ‘더 이상은 못 참아’ 이후로 주연작이 없다.
“드라마 안 한 지 10년 정도 됐어요. 연기는 내가 혼자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써줘야 하죠. 내가 꼭 필요한 시기는 옵니다. 은퇴는 생각 안 해봤어요. 정신이 흐려지고, 대사도 못 외울 때 그만두는 거죠. 죽는 게 은퇴 아닌가. 하하.”
다시 연기할 기회가 온다면? “당연히 하지. 나는 배우니까.”
데뷔 60년 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합쳐 200편 넘게 출연한 그는 흥선대원군, 중앙정보부장, 북한 국방위원장 등 이색적인 배역도 소화했다. 특별히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담담히 말했다.
“감독, 작가가 다 알아서 배우에게 맞는 역할을 만들어주는 거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누구든 마찬가지예요. 요즘은 매니지먼트가 강해져서 그렇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인기 있는 배우들에 한해서죠. 연기자는 원래 그래요.”
후배들 이야기도 꺼냈다. “젊은 신인들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삶을 사는 게 계획적이고 우리 때보다 훨씬 똑똑해요.”
‘눈여겨보는 후배’가 있냐는 질문에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생각이 안 나네”라며 목소리를 낮췄다.
“혼자 사는 삶 힘들지만…행복 느껴보고파”[서울=뉴시스] 전재경 기자=배우 백일섭이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뉴시스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재판매 및 DB 금지
아들과 딸을 둔 백일섭은 최근 경기도 화성에서 용인으로 이사했다.
“요즘 바빴어요. 화성에 살다가 애들 옆으로 가려고 이사했어요. 어제 집 정리 다 끝났습니다.”
10년 전 아내와 별거를 시작했다. 혼자 사는 건 이제 익숙하지만, 힘이 들 때도 많다. “내가 다 처리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내가 택한 길이니까 후회할 수도 없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어요.”
여름 더위에 지쳐, 하던 운동도 잠시 멈췄다. “너무 더워서 운동도 잘 못했어요. 선선해지면 좋아하는 골프도 치고, 유산소 운동도 해야죠.”
한때 반주로 소주 두 병을 마실 정도로 애주가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나이 먹으니까 술이 맛이 없더라고요. 집에서 이따금씩 한두 잔 해요. 연초담배는 10년 전에 끊었어요. 지금은 전자담배만 피워요.”
“요즘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라고 묻자, 백일섭은 “한참 생각해봐야겠네”라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가 허공을 바라봤다.
“뭐가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행복하고 안 하고의 개념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똑같아요, 일상생활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질문에는 “안 가고 싶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꾸밈 없이, 편안하게, 또 아까 얘기한 행복을 느껴보면서 살고 싶어요.”
인터뷰 말미, 백일섭은 의자에 앉은 채 맞은편 식당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곳에서 유튜브 촬영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먹방을 찍는 거냐고 묻자 그는 웃었다. “코털 가수 장계현 만나요. ‘잊게 해주오’ 부른 가수요. 이 식당이 장계현 와이프가 하는 집이에요. 예전에도 자주 왔어요.” 말끝에 아이 같은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