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전소미. (사진 = 더블랙레이블 제공) 2025.08.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만 열네 살에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낸 전소미(24)는 평범하지 않은 성장 서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클리셰(cliché)’로 점철된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전소미도 자신이 가사 작업에 참여한 신곡 ‘엑스트라’에서 “클리셰(Cliché)로 가득찬 스토리(story) 널 바라보는 나”라고 노래했다.
2015년 그룹 ‘트와이스(TWICE)’ 멤버를 뽑는 JYP엔터테인먼트와 엠넷의 합작 서바이벌 오디션 ‘식스틴’에 출연한 뒤 이듬해 엠넷 ‘프로듀스 101’ 시즌 1에서 1위를 차지해 ‘아이오아이’ 멤버가 된 ‘원조 국민센터’다.
당시 특별했던 이 서사는 대중에게 익숙해진 전소미와 함께 당연하게도 평범한 서사가 됐다. 하지만 전소미 자체가 비정형이다. 애당초 빤한 길로 가지 않는다.
올해 데뷔 10년차를 맞아 아티스트로서나 인간으로서나 혼돈을 맞이했는데, 그걸 도리어 분기점으로 만들어낸다. 그래서 최근 발매한 새 앨범인 두 번째 EP 제목도 ‘카오틱 & 컨퓨즈드(Chaotic & Confused)’다. 자신이 마주한 혼란에 정면대결하며 무질서한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근데 그 아름다움은 단지 보기 좋은 걸 가리키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전소미의 자세를 바라보게 만든다. 이를 테면, 자칫 무인칭으로 읽힐 수 있는 전소미의 다양한 시점이 엇갈리고 교차하면서 새로운 순간들을 나열한다.
이것들이 전소미의 상상에서만 나온 게 아니라 더 믿음직스럽다. 10년을 K-팝 현장에서 절박하게 매달린 끝에 나온 혼란이라, 정작 우리에겐 혼란스럽지 않다. 혼란은 기꺼이 뛰어든 자의 것이다. 가만히 있는 자에겐 혼란이 없다. 그래서 이건 전소미의 혼신의 노래가 된다.
스터터 하우스(Stutter House)(‘클로저’), 포스트 펑크(Post Punk) 재해석(‘에스카페이드(Escapade)’), 뉴 디스코·R&B 사운드(‘엑스트라(EXTRA)’), 변화무쌍한 하이브리드 팝(‘카오틱 & 컨퓨즈드’) 등의 세련된 곡들은 전소미와 소속사 더블랙레이블이 음악을 이 만큼이나 톺아보고 있다는 결과치다.
[서울=뉴시스] 전소미. (사진 = 더블랙레이블 제공) 2025.08.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대중음악계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벤 E. 킹의 ‘스탠드 바이 미’를 샘플링한 션 킹스턴(Sean Kingston)’의 ‘뷰티풀 걸스(Beautiful Girls)’를 샘플링한 ‘클로저(CLOSER)’에선 고전적 취향의 트렌디함을 엿본다. 다음은 최근 서울 용산구에서 전소미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
-타이틀곡 ‘클로저’는 션 킹스턴 ‘뷰티풀 걸스(Beautiful Girls)’를 샘플링한 곡입니다.
“노래 자체와 명성을 존중하되 ‘제 색깔로 어떻게 만들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정통 하우스 음악이에요. 앨범명은 카오스적이고 혼란스러운 제 상황을 딱 반영한 거예요. 배우는 것도 많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도 많고, 말하고 싶은 것이 슬슬 처음으로 생기기도 했죠. 많은 분들이 ‘패스트 포워드’ 같은 댄스 곡을 많이 기대하시고 보고 싶어하시는 거 같았어요. ‘클로저’는 음악적으로 깊은 장르를 파고들었지만, ‘에스커페이스(Escapade)’는 지금 시점에 맞는 제 느낌을 그대로 풀어내려고 했어요.”
-소미 씨가 카오스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데뷔 10년 차인데, 스물네 살밖에 안 됐잖아요. 10년 동안 대중에게 보여드린 모습이 너무 많은데 그 안에서 솔로 가수로서 어떤 모습이 신선한지, 어떤 모습을 좋게 봐주실까 고민했어요. 제가 이제 어린 여자애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성숙한 여인도 아니고… 그 중간에서 인간적인 전소미와 아티스트로 음악을 풀고 싶어 하는 제 욕망과 모든 것들이 좀 섞이면서 혼란이 찾아왔죠. 특히 이번엔 곡이 주는 의미와 별개로 제가 표현을 하고 싶고 제가 말하고 싶은 의미가 뭘까를 생각하면서 그걸 뮤직비디오, 앨범에 녹여내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게 어려운 질문은 ‘어떤 콘셉트로 컴백했냐’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냐’예요. 전 콘셉트를 정해놓고 컴백을 한 적이 없어요. 그 때마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의 표현법이나 제가 승화시킬 수 있는 곡들로만 컴백을 했죠. 제 일대기를 ‘타임스탬프(time stamp)’ 찍어서 컴백을 한 거죠.”
-그럼 이번 앨범에서 말하고 싶은 전소미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혼돈은 현재 진행형이고, 그래서 그 혼돈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로서는 물론 인간적인 면에서도 혼돈이 현재 진행형이에요. ‘너 자신을 사랑하라’ 아니면 ‘너를 아름답다고 생각해라’라는 말들이 제겐 큰 도움이나 위로가 됐던 적이 없어요. 이 말들은 정말 제가 느껴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이제야 살아가는 방법과 그 의미가 어떤 건지 나름 해석이 되는 시기를 지나고 있어요. ‘클로저’ 뮤직비디오에 지금 생각을 담았어요. 나르시시즘을 콘셉트로 잡았는데, 공부해보니까 나르시시즘은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증오심도 같이 따라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너무 사랑하기도 하고 저를 너무 증오하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상태를 찍어냈어요. ‘혼란스러워도, 답이 안 정해져도 자기 스스로를 그냥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시간을 흘러가는 대로 둬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라’인 거죠.”
[서울=뉴시스] 전소미. (사진 = 더블랙레이블 제공) 2025.08.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클로저’의 장르인 ‘스터터 하우스(Stutter House)’는 그래서 곡의 메시지에 더 부합한다고 봐요. 일렉트로닉의 하위 장르인 스터터 하우스는 비균질하고, 불균질하고, 샘플링도 많이 하고 혼란스러우면서 감성적이잖아요. 해당 장르의 대표주자인 프레드 어게인(영국 출신 가장 핫한 일렉트로닉 DJ 겸 프로듀서)이 최근 대표적이죠.
“스터터 하우스라는 장르적 디테일은 이렇게 정해졌어요. (테크토닉적인) ‘패스트 포워드’ 때 제 댄스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제가 성숙해지는 가운데 혼란스러워지면서 좀 더 깊이 있는 장르를 파고들고 싶었어요. 왜 스터터 하우스를 택했냐고 물으신다면, 인간적으로 너무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가사가 있는 노래를 들은 적이 없어요. 한동안 다 기계음으로 완성된 노래를 들었거든요. 프레드 어게인의 노래 믹스도 굉장히 많이 들었고요. 이미 제 머릿속에 너무 많은 말들이 있기 때문에 노래 가사를 듣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기계음이 많이 듣들어간 노래를 많이 들었고, 그렇다 보니까 이번 장르를 택하게 됐어요.”
-‘에스카페이드’와 ‘델루’는 작사·작곡, ‘엑스트라(EXTRA)’·’카오틱 컨퓨즈드’는 작사 등 앨범에 전반적으로 참여를 많이 했어요.
“테디 프로듀서님이 이번 앨범 작업을 하시면서 미션을 많이 주셨어요. ‘가사 정리를 해봐’ ‘이 분위기를 가사로 표현해봐’ 등의 말씀을 해주시면서 저에게 많은 영역의 기회를 주셨거든요. 근데 말씀드렸던 것처럼 혼란스러운 시기에 가사를 쓰려고 하니까, 잘 안 되는 거예요. 출국을 해야 하는 전날 호텔 방 예약을 해 그곳에서 노래 가사를 다 정리하고 다음날 출국을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식으로 감정이 말하는 대로, 즉흥적으로 행동했던 적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 만큼 제가 지배된 이번 앨범이 ‘곧 저다’라고 얘기할 수 있죠.”
-이번 앨범 선공개곡 제목이 ‘엑스트라’잖아요. 그런데 소미 씨는 ‘국민센터’였잖아요. 상반된 키워드라고 느껴졌습니다.
“이제 ‘국민센터’ ‘1등’ 같은 키워드만으로는 살 수 없어요. 계속 스포트라이트만 받고 살 수 없죠. ‘엑스트라’에 제가 개인적으로 느꼈던 경험, 뒤에 있는 제 모습들이나 감정들을 넣어서 표현을 해보고 싶었어요. (MBC TV 예능물인)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엑스트라 출연은 재밌게 촬영했는데, 저만이 할 수 있는 프로모션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떠올린 거예요. ‘프로듀스 101’ 때 제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당당하고 솔직해서였던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경연에 참여했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사랑을 주셨죠. 제가 아무리 경험을 많이 하고 진중해졌다고 해도 그 때 모습은 제 모습이거든요. ‘서프라이즈’ 엑스트라 모습도 정말 ‘나 자체이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출연했어요.”
-K팝계에 전소미 씨 같은 서사를 쓴 이도 없어요. 실패했다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거예요?
[서울=뉴시스] 전소미. (사진 = 더블랙레이블 제공) 2025.08.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전 정말 서사가 많은데요. 다시 딛고 일어나는 원동력이 있었던 적은 없어요. 제가 멈추면 제 서사는 끝이 나기 때문이죠. 서사를 위해서 살아간 적은 없지만, 멈춘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희 어머니가 되게 강인한 분이세요. 전 엄마를 생각해서라도 멈추면 안 되는 사람이죠. 그래서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앞만 보고 살아왔어요. 근데 한편으로는, 너무 앞만 봤기 때문에 좌우를 보지 못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늘 미래지향적이라 앞만 봤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과거를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요. 미래를 계속 생각해 와 늘 준비가 돼 있던 사람 같아요. 그래도 현재를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날씨가 바뀌는 걸 실감한다든지, 지금 일어나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말이에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긴장이 되지는 않나요?
“대중성이랑 타협을 하다 보면 계속 똑같은 게 나온다고 생각해요. 또 예술성과 대중성이 타협하면 어느 부분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될 수도 있다고 봐요. 이번엔 예술성을 좀 더 택했어요. 조금은 예쁘지 않은 각도여도 다양한 앵글에서 카메라를 찍어보고요. 갖고 있는 예쁜 걸, 조금 포기해서라도 곡의 의미와 뮤직비디오 메시지를 담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어요. 이런 부분이 대중에 어떻게 다가갈 지 모르겠지만, 이 변화는 제게 너무 중요한 의미라, 메시지가 꼭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런데 떨리거나 무서운 건 없어요. 오히려 설레요. 저도 몰랐던 제 감정들을 시각적으로 만들어낸 게 ‘엑스트라’ ‘클로저’ 뮤직비디오거든요. ‘내 감정들이 저렇게 생겼구나’를 느꼈어요.”
-예쁜 걸 포기해서라도 의미를 강조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그냥 자연스러웠던 것 같아요. 너무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했고, 그간 보여드린 모습은 많고… 지금 이 시점에 컴백을 하는 곡이 제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직감을 한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이 앞으로 제 활동을 확장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요. 많은 분에게 제 진정성을 어떻게 이해시켜 드려야 하는데, 내가 더 오래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어떻게 하면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가수 경력으로 고민이 많았는지, 인간 전소미로서 고민이 많았는지가 궁금해요.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집에 있는 소미나, 밖에서 보여드리는 소미나 정말 똑같거든요. 그래서 그 두 모습이 맞물려 있어요. 다만 어렸을 때부터 절 보신 분들은 귀엽고 밝고 통통 튀는 모습을 기억하시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게 있고, 생각은 더 깊어졌거든요.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섞지?’ ‘대중이 보고 하시는 모습이 내 어릴 때 모습일까?’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지금 이대로 해도 되는 걸까’ ‘어떤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질까’ 등의 생각에 굴레에 빠져 있다가, ‘대중은 정작 날 그렇게 자세하게 생각하지 않으실 수 있지’라는 생각이 또 꼬리를 물어요.”
[서울=뉴시스] 전소미. (사진 = 더블랙레이블 제공) 2025.08.1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뷰티 브랜드 ‘글맆’ 대표이기도 하잖아요. 리애나, 아리아나 그란데, 시저 등 전 세계 톱 여성 뮤지션들은 모두 뷰티 브랜드를 갖고 있어요. 음악 활동과 뷰티 브랜드의 정체성이 맞물리는 시너지가 있죠?
“음악만큼이나 화장품에 워낙 관심이 많았어요.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이국적인 얼굴이잖아요. 숍을 다니면서도 한국 활동에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받지 못할 때도 많았어요. 그럴 때 속상하니까 ‘어떻게 해야 예뻐질까’ 생각하며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하게 된 거 같아요. 그래서 화장품과 친했죠. 공백기일 때도 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아이돌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는 걸 보여드리고 싶고요. 지금 두 일을 병행하면서 박자를 잘 찾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두 영역이 저 때문에 서로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해요. 상호작용할 수 있는 영역은 뭐가 있냐면요, 새 앨범에 맞춰서 립 컬러가 나와요. 이런 식으로 연결할 수 있는 건 연결하되 아닐 때는 온앤오프가 될 수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테디 씨를 비롯해 더블랙레이블 프로듀서분들과 작업은 어땠나요?
“회사 프로듀서 분들한테 다 말씀드렸던 게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할 테니까 오빠들도 죽을 힘을 다해서 도와주세요’였어요. 그리고 가사 쓰기를 비롯 제게 맡겨주신 업무들도 많았어요. 힘들 때 제 감정을 정리해서 테디 오빠에게 말씀을 드리는데요.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가장 힘이 됐던 건 ‘소미야 이젠 걱정이 없다’라는 말씀을 해주셨을 때였어요. ‘나 생각보다 되게 준비가 돼 있나 보다’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거든요.”
-소미 씨는 똑똑한 사람 같아요. 어릴 때부터 사회생활을 해서 자연스럽게 익힌 부분들이 많은가요 아니면 스스로 다양한 공부를 많이 하는 편입니까?
“저는 모든 것에서 영향을 받는 아이거든요. 특히 사람한테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아요. 데뷔 과정부터 저 말고 100명을 만났고, 어린 아이니까 광고 현장에 가도 나이가 많은 스태프 분들이 항상 많잖아요. 그렇게 제 의지와 상관 없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까, 그런 타이밍에서 배운 게 많아요. ‘이럴 땐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저렇게 저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네’ 등을 생각했죠. 관찰하는 걸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