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준호 기자 = 한국이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 직전 대미 협상 타결로 ‘관세 폭탄’을 피할 수 있게 됐지만, 한숨 돌리기도 전에 훨씬 복잡하고 민감한 안보 협상을 마주해야 한다. 관세 협상보다 녹록지 않은 더 ‘큰 산’을 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미 안보 협상은 25일 워싱턴DC에서 열릴 예정인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물밑 조율은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큰 진전은 없었던 만큼 두 정상이 주요 쟁점인 ‘동맹 현대화’를 비롯한 한미 동맹 발전에 대한 대원칙을 확인하고 나머지 세부 협의는 실무자급에 맡기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아직 제대로 된 협상은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동맹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현금 자동 지급기)”에 비유하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 달러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트럼프 정부의 새 국방전략 수립을 주도하는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엑스(X)에 “한국은 강력한 대북 방어에 더욱 적극적으로 앞장서며 국방비 지출을 확대하려는 의지를 통해 모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한국의 국방비 증액을 기정사실화 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 8일 주한 미군 조정과 관련해 “주한미군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배치 전력 등 역량이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주한미군 감축도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러한 발언들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력 확장에 맞서 군사적, 재정적 부담을 동맹국과 나누겠다는 미측의 전략적 압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시대적 변화를 내세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골자로 한 새로운 안보 정책 기조를 향후 협상 과정에서 `속전속결’로 관철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주한미군 감축 뿐만 아니라 방위비분담금 및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입 등 다방면에서 한국을 압박할 공산이 크다.
주한미군의 역할을 인도·태평양 지역까지 확대하는 개념을 담고 있는 동맹 현대화를 비롯한 한미 안보 협상은 반세기 넘게 굳어진 동맹의 구조를 재구성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시간에 쫓겨 속도전으로 흐르게 될 경우, 동맹의 전략적 중요성을 높이려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동맹의 안정성을 오히려 더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건 지속 가능한 동맹 재설계를 협상의 중심에 두는 것이다. 안보는 국가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