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남주현 기자 = “한국은행 내부에서는 내수가 회복되고 있다니 어쩌겠습니까. 기준금리를 내리자고 해도 경기가 좋아진다는 주장이 워낙 강해서 인하 의견을 내기 어려웠습니다.”
지난해 여름 한 금융통화위원의 속내다. 당시 소비는 위축됐고, 기업 체감 경기도 얼어붙고 있었다. 하지만 한은은 경기를 낙관했고 금리는 꿈쩍하지 않았다. 한은 내부에서 인하론은 신중론에 묻혔고, 결국 금리 인하는 가을이 되어서야 단행됐다. 그렇게 ‘실기’ 논란에는 불이 붙었다.
물론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 우려는 금리 동결 명분이었다. 그러나 한은이 인하에 못 나선 근본적인 원인은 한은의 경기 판단 착오에 있었다. 한은은 지난해 8월, 당해 연간 성장률을 2.4%, 2025년은 2.1%로 예상했다. 사상 첫 분기별 전망을 통해 3분기 0.5% 성장을 낙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실제 지난해 성장률은 2.0%에 그쳤고, 3분기 성장률은 0.1%에 불과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0.9%까지 내려간 상황이다. 다급해진 한은은 지난해 9월 금융안정상황 간담회에서 인하 깜빡이를 켜고 결국 10월과 11월 연속 금리를 낮췄다. 금융위기 때나 있었던 속도전이었다.
같은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창용 총재는 전망을 “개선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후 발표된 4분기와 올해 1분기 예측치도 실제 수치와 큰 차이를 보였다. 한은은 전망 실패 책임을 ‘계엄’으로 돌리고 올해 2월과 5월 퐁당퐁당 금리를 낮췄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10월 금통위가 다가왔다. 분위기는 지난해와 데자뷔처럼 닮아 있다.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 불안이 금리 인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 대책도 나왔다. 달라진 점은 경기가 더 나빠졌다는 점과 원화값이 더 떨어진 극단의 상황에 내몰렸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는 작년과 달리 ’10월 동결’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한은이 경기보다는 집값과 고환율을 더 크게 고려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최근 발표된 부동산 대책 효과를 지켜볼 시간이 필요하다”와 반도체 경기가 ‘예상보다’ 좋아 경상수지가 개선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앞으로도 집값과 환율 불안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벌써 일부 해외 투자은행(IB)에서는 “금리 인하가 아니라 인상을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결국 우물쭈물하다 인하 시점이 놓쳤다는 아쉬움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통화정책은 예측의 정교함과 실행력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이 함께 작동해야 하는 예술이다. 이 총재 부임 후 시끄러운 한은으로 거듭났다지만 꼼꼼함과 신중함으로 포장된 특유의 우유부단함은 아직 벗어내질 못했다. 한은에게 보다 필요한 것은 정확한 판단과 단호한 실행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