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홍연우 기자 = 지난 5월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하며 시작된 더불어민주당의 사법부 개혁 압박이 추석 연휴에도 이어졌다. 연휴 직후 열리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불출석할 경우, 그에 대한 동행명령 발부 가능성까지 언급해 입법부와 사법부의 일전은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몇 달째 이어져 온 입법부의 압박에도 조 대법원장은 ‘침묵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사퇴 요구엔 침묵하며 여당의 사법개혁안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발언만을 내놨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25일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우리 헌법은 재판의 독립을 천명하고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재판의 독립을 보장한 헌법정신을 깊이 되새겨 흔들림 없는 자세로 재판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2일 열린 ‘2025 세종 국제 콘퍼런스’ 개회사에선 “세종대왕께서는 법을 왕권 강화를 위한 통치 수단이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향상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규범적 토대로 삼으셨다”고 말해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입장을 피력해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조 대법원장의 개회사는 미리 준비된 원고였으나, 발언이 나온 시점 탓에 사법부 개혁을 향한 여당의 맹공과 본인에 대한 의혹 제기 및 사퇴 압박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듯한 대통령실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이후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말 헌법과 법원조직법, 국정감사조사법, 국회법 등을 이유로 들어 두 차례 열린 청문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해 협의 과정의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사법부 독립을 보장한 헌법 취지에 반한다”고 말했다. 오는 13일과 15일 열리는 대법원 국정감사와 현장검증에도 조 대법원장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일반증인으로 채택된 조 대법원장의 선택에 따라 법사위가 대법원장을 상대로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입법부의 사법부 개혁 강공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 대법원장의 침묵도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침묵과 회피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 조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주장하려면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 했는지 돌아보고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조 대법원장은 대선 전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직권 회부해 합의기일을 지정하고 36일 만에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조 대법원장이 취임 초기부터 강조한 ‘6·3·3 원칙'(1심 선고는 6개월 이내, 2심 3개월, 3심 3개월)에 따른 것이란 해명을 내놓았으나, 전례 없이 신속한 전원합의체 판결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샀다. 특히 그 과정에서 법원 실무상 준수되지 않은 사례가 많아 여진은 계속됐다. 이른바 ‘내란 재판부’가 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를 이끄는 지귀연 부장판사가 70년이 넘게 지속된 구속기간 계산 방식을 뒤엎고 ‘시간 계산’을 적용해 석방한 점에 대해서도 많은 국민은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사법부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로부터 촉발된 국가 위기 상황에 헌정 질서의 수호자이자 인권 최후의 보루로서 그 역할에 충실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재판 기관으로서 공정함을 지켰는지, 일련의 행위에서 국민이 의문점을 가진 지점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 시도했는지 등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한 책임과 역할을 다했는지 반추해야 한다.
여권에서 추진 중인 사법개혁안에서 법원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개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수장이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사법부의 위신은 침묵과 회피로 세워지지 않는다. 여권의 사법 개혁안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부분과 수용하지 못할 부분을 구분해 사법부 수장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