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배우 임수정.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2025.08.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신지아 인턴 기자 = “자기 욕망만 생각하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데뷔 28년차가 된 배우 임수정(46)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디즈니+ 시리즈 ‘파인:촌뜨기들’ 속 악인 ‘양정숙’으로 그는 완벽하게 변신했다. 앞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 영화 ‘김종욱 찾기'(2010) 등에서 보여준 아련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너무 재밌어서 감독님한테 캐릭터에 대해 이것 저것 여쭤봤어요. 제가 그동안 상대를 배려하거나 포용하는 역할만 했다면, 양정숙은 진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움직이는 캐릭터라 그게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임수정은 양정숙으로 연기 인생 전환점을 맞았다고 얘기했다. 그는 “이젠 작품 전체 이야기가 저를 설득시켜야 선택하는 것 같다”며 “역할이 갖는 신념이 사회적으로 옳지 않더라도, 주체적이여야 끌린다”고 했다.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오열했죠”
‘파인: 촌뜨기들’은 1977년을 배경으로 바닷속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생계형 촌뜨기들이 서로를 속고 속이는 이야기다. 극 중 양정숙은 ‘흥백산업’ 천 회장(장광) 새 부인으로, 촌뜨기들 중엔 가장 높은 신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삶에 밴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냥 태생적으로 돈을 좋아하고, 권력을 갖고 싶어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본능적인 거죠.”
양정숙은 극 초반엔 그저 돈계산에 탁월한 경리 출신 사모님으로 보이지만 천 회장을 속이고 전 남편 전출(김성오)을 바로 옆에 두는가 하면, 경호원 눈 밖에서 오희동(양세종)을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눌 정도로 치밀하고 음흉하기까지 하다.
임수정은 “감독님이 1~2화 촬영 땐 ‘눈빛이 너무 착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점점 흑화할수록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만큼 회차가 거듭될수록 드러나는 양정숙의 욕망을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깔끔하게 소화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류승룡도 현장에서 “임수정 표정을 보고 진짜 무서웠다”는 말을 했다.
[서울=뉴시스] 배우 임수정.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2025.08.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제가 봐도 짠했어요”
촌뜨기 신분으로 시작해 재벌집 사모 자리까지 따낸 양정숙. 하지만 어두운 바닷 속에 숨겨진 보물처럼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말로는 결국 파멸이다. “세상에서 본인이 제일 똑똑한 줄 알았는데 주변 사람들 다 배신하고, 가장 친했던 의상실 사장한테도 뒷통수를 맞잖아요. 그런 빈틈이 또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임수정은 이런 모습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보이도록 자기 방식으로 해석해 표현했다. 그는 감독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각종 레퍼런스를 통해 양정숙을 다듬어 갔다.
“양정숙이 결국 궁지에 몰리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유산까지 하는 장면에선 저도 제가 그런 표정을 할 줄은 몰랐어요. 되게 드센 여성이라 화려한 언변으로 어리숙한 남자들 다 휘어 잡는 것처럼 보여도 집에서 천 회장 발마사지는 해야 되죠. 어쩔 수 없는 서열이 있어요. 또 오희동을 남몰래 마음에 품고 있기도 하고…사랑에 있어서 만큼은 서툴고 약간은 순수한 사람이예요. 빈틈도 많아요(웃음)”
임수정은 자기도 모르게 사모님 자체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님이 저를 보시더니 양정숙 사모같다고 말씀하셔서 ‘드디어 찾았구나’ 했다”며 “감정 상태부터 발성까지 연기로 하나 씩 알아가서 촬영 내내 즐거웠다”고 했다.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보여줄 거예요”
임수정은 20대를 연기로만 보냈다. 열심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왔어도 슬럼프가 없을 순 없었을 것이다. “미친 듯이 연기만 하고 살아서 개인적인 삶과 밸런스를 맞추고 싶은 시기도 왔었어요. 그러다가 2019년에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배타미를 맡고 연기가 또 재밌어지기 시작했죠.”
악역까지 섭렵한 그는 모든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배우가 돼가고 있다. 끊임없는 노력과 다양한 경험으로 만든 새로운 얼굴이 화면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지 기대된다고 했다. “배우로써 확장을 기다렸어요. 이번 작품으로 그 기회를 얻게 돼서 큰 운이 찾아왔다고 생각해요. 다음엔 양정숙처럼 귀여운 악당 말고 완전 서늘한 악역을 해보고 싶어요. 또 시즌2에선 양정숙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