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다린.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5.08.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싱어송라이터 다린(29·신소희)의 노래가 뭉클한 이유는 감각적 비유를 나열해서가 아니다.
그녀의 정교한 노랫말, 멜로디, 호흡은 좋은 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청자의 궁금증에 대한 답이다. 좋은 보컬이되 단순히 꾸미는 기교가 아니라, 노래의 메시지를 톺아보는 능력이 일품이다.
해석되는 건 해석되는 대로, 이해되지 않는 건 이해되지 않는 대로 삶의 불가항력적인 걸 최대한 그대로 전하는 다린의 노래는 삶의 순응과 호응의 중간에서 항상 맴돌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그녀의 콘서트는 그래서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관객들이 같이 궁리하는 자리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흐르는 무엇. 특히 다린의 대표 여름 콘서트 브랜드 ‘열대야 시리즈’는 호흡하기도 더운 무더위 속 심야에만 머물 것 같던 우리 삶에게 조심스레 건네는 밝은 손길이다.
올해 ‘열대야 시리즈’는 오는 15~17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에서 ‘열대야 : 내가 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이라는 타이틀로 열린다. 다음은 공연 전 다린과 서면으로 나눈 일문일답.
-열대야 시리즈는 2019년 시작해 코로나 기간의 휴식기를 거쳐 2023년,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열리죠. 명실상부 다린 씨 대표 브랜드 공연이 됐는데요. 이 공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한 해의 중반을 지나 많은 계획과 다짐이 무르익는 여름이 되면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그간의 성취를 돌아보는 마음과 더불어 다가올 하반기에 대한 각오를 다지다 보면, 긴장 어린 마음에 쉽게 지치곤 했는데요. 저와 닮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격려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금 다린 씨에겐 어떤 의미의 공연이 됐습니까?
“이 공연이 한 해의 축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이벤트가 됐어요. 상반기에 어떤 활동을 해야 ‘열대야’로 이어졌을 때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거든요. 마찬가지로 ‘열대야’의 감상을 품고 맞이하는 가을과 겨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답니다. 그래서인지 ‘열대야’라는 공연과 여름 시즌의 활동에 무척 애정을 가지게 됐어요. 선보이는 모든 곡이 소중하지만, 여름의 노래와 공연은 가장 내밀한 마음으로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올해 열대야 공연 시리즈엔 ‘내가 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이라는 부제가 붙었어요. 이 부제가 붙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매해 열대야 공연에는 특별한 선물이 있어요. 미발매곡 4곡이 담긴 CD인데요. 수록된 네 개의 곡 중에 한 곡이 다음 해 열대야 때 발매가 된답니다. 이번 공연의 부제이자 13일에 발매되는 곡인 ‘내가 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또한 작년 열대야 CD에 수록됐던 곡이에요. 열대야 공연에 오신 분들과 나눌 수 있는 재밌는 요소 중 하나예요.”
-또 싱어송라이터 강아솔, 이설아, 전진희라는 화려한 게스트도 나옵니다. 이런 섭외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해요.
“제 사랑을 설명할 때 열 줄로 빽빽하게 사랑을 적는 것도 좋겠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개할 때 전해지는 것은 또 그 방식만의 아름다움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작년부터 열대야 공연에 손님을 모시기 시작했는데요. 작년에는 사공, 권나무, 곽진언 님께서 무대를 채워주셨어요. ‘여름을 지나칠 때 의지한 노래들의 주인공’이 주제였죠. 먼저 여름을 살아낸 선배들의 격려와 응원을 한껏 건네받는 시간이었답니다. 지난 여름의 감동을 회상하며 올해의 공연을 구상하던 5월, 반드시 세 분(강아솔, 이설아, 전진희)을 꼭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바닥의 슬픔과 함께 눕는 목소리’가 주제거든요. 세 분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투명해진 피부로 숨을 쉬는 것만 같아요. 가장 연약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 같달까요. 그래서 노래를 들을 때면 리스너로서 크게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더불어 음악가로서도 크게 감사하게 되어요. 이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들 덕분에 제가 어떤 곳으로 어떻게 걸어가야 할지를 느끼게 되거든요.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긴 메시지를 드렸는데, 세 분 모두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너무나 기뻤답니다.”
-이 대목을 인디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연대라는 해석으로 읽어내도 괜찮을까요?
[서울=뉴시스] 다린.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5.08.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너무나 든든한 해석이에요. 이러한 연대가 다른 분들께도 응원으로 닿는다면 좋겠어요.”
-작년에 ‘여름이 지나고’라는 좋은 곡도 냈는데요. 다린 씨에게 여름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여름이란 몸과 마음이 지나는 뜨거운 계절, 치열하고 혼란스러운 마음이에요. 오류와 혼란은 가장 밀도가 높아지는 순간에 찾아오죠. 그 말인즉슨, 굴하지 않고 도달했다는 것이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도, 피하지 않고 끌어안으며 단 한 번뿐인 시간 속을 내달리는 뜨거운 마음! 여름을 다른 말로는 사랑의 증거라고 읽을 수도 있겠어요.”
-여름에 공연하면 공연의 밀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급합니다. 습기, 온도, 기분 등이 달라지니 아무래도 영향이 있을 거 같은데요.
“습도가 큰 영향을 줘요. 여름 공연의 어려운 점 하나는 악기의 변화인데요. 제가 공연 때 사용하는 악기들은 대부분 나무 악기라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든요. 그래서 음정을 맞춰두면 쉽게 기준점에서 벗어나 버리곤 해요. 그 때문에 모든 스태프가 소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습한 날 노래하는 것을 반기는 편이에요. 소리를 더 몸으로 느끼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실제로 습한 날에 공기 중에 있는 물 분자가 소리의 파동을 더욱 잘 전달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러한 면에서 여름에 만드는 공연은 온몸으로 예민함을 잘 사용하게 하는 것 같아요.”
-또 아무래도 다린 씨 하면 대표적 제목이기도 한 ‘가을’이 생각합니다. 여름과 가을, 뮤지션은 이 두 계절을 보내는 방법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요.
“여름엔 몸과 마음의 더위를 애써 이겨내려 한다기보다 그 속에서 잔뜩 괴로워하며 보내요. 바깥으로 더 나가려 하고, 더 걷고, 더 일하고. 끓는 마음으로 지내거든요. 크고 작은 공연들, 페스티벌도 보러 가고 그래요. 그러다 가을이 찾아오면 아주 너그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홀로 보내는 시간도 늘고, 삶에서 일의 비중도 작게 두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열기를 식힌다고 해야 할까요.”
-가을은 이소라 씨가 음악 프로그램 ‘프러포즈’에서 읽은 엽서의 답장 격이라고 알아요. 그 엽서에 훌륭한 답이 됐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데 다린 씨는 어떤가요?
“그렇게 여겨지면 너무나 기쁘죠. (네이버 문화재단 인디 지원프로그램) 온스테이지에 올라온 가을의 영상 소개에 보면, 제가 이소라 선배님의 엽서에 대한 답장이라 생각하고 글을 적었다고 적혀있어요. 소개글에는 어떠한 거짓도 없지만 실은 제가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컸어요. 오로지 그 마음으로만 쓰인 곡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선배님을 향한 저의 존경과 사랑도, 가을이라는 노래가 가진 쓸쓸한 인상도, 많은 분이 이야기처럼 여겨주시는 답장의 역할도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더라고요. 어떤 고집스러운 마음 하나를 잘 달래두고, 지금은 가을에 대한 어떠한 해석도 반갑고 기쁘게 여기고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께도 소중한 곡이 돼가는 것 같아 기뻐요.”
-다린 씨는 정말 좋은 보컬을 갖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저는 품어주는 보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계절에 따라 농도가 다른 거 같기도 해요. 계절마다 달라지는 보컬감각이 있을 거 같은데 어떤가요?
“제가 생각하기에 다린의 제철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품어주는 보컬이라고 하셨는데, 그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어울림의 방식이거든요. 저는 그 시기가 잃어가는 온기를 붙잡거나 주변에 나누기에 참 좋은 시기라고 생각해요. 저만의 정서, 노랫말이 가장 도드라지는 때인 것 같아요. 쓸쓸하지만 옹기종기 따뜻한 어떤 것들.”
-다린 씨의 노랫말은 일상어를 또 특별한 맥락으로 빛나게 해주는 용법이 뛰어난 거 같아요. 물론 곡마다 다르겠지만, 노랫말을 쓰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무수히 많지만, 근래 들어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단어가 가진 물성과 그 힘을 믿는 것이에요. 단어가 데려오는 단어를 붙잡는 일은 굉장히 흥미로워요. 곡의 정서를 매만지게 할 수 있냐 아니냐를 두고 선별하게 되거든요. 예시를 들어보자면, ‘빛이 달리는’과 ‘빛이 흐르는’에서 느껴지는 힘은 아예 다르죠. 그렇기에 이들이 데려오는 다음 단어도 전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게 길어낸 단어들을 보다 보면, 써야 하는 것과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것이 명확히 분류돼요. 그것이 설령 처음 노래를 출발하게 한 문장일지라도 말이에요. 노랫말을 만들어 갈 때 이처럼 자신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극복해 내는 과정이 저에겐 무척이나 중요해요.”
[서울=뉴시스] 다린. (사진 = 뮤지션 측 제공) 2025.08.13.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다린’이라는 활동명은 그리스어로 ‘값진 선물’이란 뜻이죠. 많은 팬들에게 다린 씨 음악이 그런 선물이 돼 왔는데, 다린 씨의 노래, 목소리가 가장 선물 같다고 느낀 때는 언제인가요?
“언젠가 팬 한 분께서 동영상을 하나 보내주셨어요. 자신의 아이가 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영상이었는데요. 작고 반짝이는 목소리로 태양계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거예요. ‘사랑해~ 사랑해~’ 하면서요. 그 영상을 보고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부른 노래, 제 목소리가 많은 분들의 일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행복의 순간이 되어주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이 무슨 행운인가 싶고. 그래서 오래 붙잡고 싶어요. 허락되는 한 팬 분들 일상에 오래오래 행복과 희망을 데려다 주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2017년 데뷔했으니, 이제 데뷔 10년차를 향해 뚜벅뚜벅 가고 있습니다. 지금 뮤지션으로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요.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더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어서, 사실상 큰 고민도 아닌 것 같긴 해요. 그저 건강하게 오래 녹슬지 않고 노래를 쓸 수 있다면 좋겠다, 도움을 잘 받고 잘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정도?”
-올해가 펑크로 시작된 한국 인디 신의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인디 싱어송라이터로서 다린 씨는 묵묵하고 성실한 행보는 보여주고 있는데요. 다린 씨가 보시는 현 인디 신의 풍경은 어떠하며, 인디 신에 현재 가장 필요한 지원이나 관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활동을 처음 시작하던 17, 18년도까지만 해도 길을 걷다가 맥주 마시면서 공연 볼까? 하고 공연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오픈 마이크를 진행하는 공연장도 지금보다 많았고, 수요도 있었거든요. 그러다 코로나가 찾아왔고, 오프라인 활동 제한으로 인해 온라인 콘텐츠가 활성화됐어요. 그때 생겨난 빠르고 편리한 소비 형태가 지금에 와서는 경험 단절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오프라인 무대라는 것 자체가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눈에 띄게 피드백을 받은 아티스트에게만 허용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종종 받거든요. 어딘가에 실황을 찍어서 올릴 만한,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사람인지가 중요해진 거예요. 그래서 뮤지션들이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방식이 굉장히 한정적으로 바뀌었어요.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비 태도에 관한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뮤지션들 개개인의 비전에 따른 선택을 이야기해 볼 수 있겠죠. 그러나 제가 강조해 건네고 싶은 말은, 음악은 사람과 사람이 함께 존재하는 방 안에서 흐른다는 거예요. 굳이 만들고, 굳이 들려주고, 굳이 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이야기가 있다고 저는 믿어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재생하는 음악을 듣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지나는 동안, 편리한 세상을 받아들이는 동안 몸의 시간과 함께 음악이 흐르는 경험을 꽤 많이 잊고야 말았어요. 슬픈 지점이죠. 그래서 한 켠의 마음이 다시금 생겨나면 좋겠어요. 길을 걷다가 공연 보러 갈까? 하고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마음이요. 많은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는 일상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고요. 더불어 서울과 지방의 작은 공연장들이 건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그곳의 예술가분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모이면 좋겠어요. 뮤지션 분들도 커다란 현상만이 답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각자의 방식으로 성실히 아름다운 것을 빚어내시면 좋겠어요.”
-올해도 ‘프롬나드(Promenade)’라는 좋은 싱글을 냈어요. 앨범 계획이 있다면요. 어떤 콘셉트의 앨범을 구상 중입니까?
“산뜻하고 친절한 노래죠. ‘프롬나드’를 발매하면서 많은 분이 행복한 얼굴의 다린을 기억해 주셔서 기뻤어요. 그래서인지 올해는 많은 분들이 편안하고 친근하게 들으실 수 있는 노래들로 인사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13일에 발매되는 ‘내가 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건’을 이어서 하반기에도 꾸준히 싱글로 인사를 드릴 예정이고요. 이다음 찾아올 앨범은 아마도 다린! 하면 떠오르는 발라드의 모습을 모은 미니앨범일 것 같아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혹시 타 가수의 노래 중에 좋아하는 여름의 노래들이 있나요?
“김동률 선배님의 ‘여름의 끝자락’, 여름 노래는 아니지만 은근한 가을이 느껴지는 여름 끄트머리에 듣는 한영애 선생님의 ‘가을시선’을 좋아합니다. 적고 보니 저는 여름이 곧 떠나는 순간을 좋아하는 것 같네요.”
-올해 여름은 다린 씨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꽉 쥔 두 주먹과 도움받을 용기로 기억될 것 같아요. 올해로 서른이 됐는데요. 이십 대 때 충분히 자신을 다룰 줄 알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전 그 생각이 큰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았어요. 어쩌면 이십 대 시절은 삼십 대 전반에 걸쳐 나올 시험 문제를 위한 레벨 테스트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멋진 30대가 시작된 올여름,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배우며, 아는 것은 한 번 더 두드려보며 잘 걸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