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명동 기자 = 최근 잇따르는 이상동기범죄가 우리 사회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아무런 관련성도 없는 무고한 시민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인 살인은 단순한 한 개인의 불행을 넘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공동체 전체에 심어주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마트에서 발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성진(33)은 흉기를 휘둘러 시민 1명을 살해하고 또 다른 시민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아무나 죽이고 교도소에 가고 싶다”고 진술하는 한편 범행 직전 마트 안 폐쇄회로(CC)TV를 응시한 채 ‘일간베스트(일베) 인증’ 손 모양을 만들어 충격을 더했다.
검찰은 지난달 15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김성진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묻지마 살인’은 통상의 살인 사건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단지 피해자 개인 뿐 아니라 사회 공동체 전체가 범행의 대상이 되므로 그 죄질의 중함과 위험성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판단은 원한이나 보복 등 명확한 동기가 있는 범죄와 이상동기범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다. 이상동기범죄가 사회 전반을 향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되는 이유다.
검찰이 재판부에 극형을 구한 배경에는 무기징역의 제도적 한계도 작용했다. 검찰은 가석방 가능성이 있는 무기징역이 사회로부터 영구적인 격리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형의 집행을 위한 사형 선고가 아니라 영구적인 사회 격리를 위한 사형 선고를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는 수형자의 교화 가능성과 사회 구성원의 안전이라는 법률의 목적성이 충돌할 때 후자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사법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물론 수사기관은 이상동기범죄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찰청은 ▲피해자 무관련성 ▲동기 이상성 ▲행위 비전형성 등 세 가지 특징을 기준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관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동순찰대 활동 강화 등 대응 체계를 정비하고 있다. 그러나 범죄의 예방이 최선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참극이 공동체 전반에 가져온 균열은 법의 엄정한 정의로 바로잡아야 한다.
검찰이 재판부에 “살인죄의 양형은 모든 형사 처벌의 기준이다. 살인의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더 고통받는 세상이라면 오늘의 행복을 미루고 노고를 감내하는 국민에게 희망이 있겠느냐”고 역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생명과 안전에 관한 권리가 침해받는 상황에서 사법체계는 공동체 질서를 회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
법의 정신은 가해자의 교화 가능성을 고려하는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 피해자에게 부과된 고통과 사회 전체에 뿌리내린 공포를 직시하고 사회에 재발 방지를 위한 명확한 신호를 보내는 것 또한 법의 근본적인 역할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는 19일로 예정된 선고기일에 재판부는 집행을 위해서가 아닌, 가석방의 여지를 완전히 차단하는 엄중한 조치로써 사형을 선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