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이앤씨 사고 현장 찾은 을지로위원회. 연합뉴스최근 작업 중 노동자들이 연이어 숨진 포스코이앤씨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고강도 제재를 예고하면서, 정부가 이번 사태를 산업재해 감축의 ‘본보기’로 삼는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기업 활동의 근간을 흔드는 강도 높은 조치를 직접 거론한 만큼, 단순한 처벌을 넘어 실질적인 경제적 제재로 산업안전을 달성하도록 재해 예방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정부, 경제적 제재로 산업안전 패러다임 전환 시도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전날 대통령 지시에 따라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건설면허 취소와 공공입찰 금지 등 강도 높은 행정제재까지 검토 중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이미 해당 현장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고 법 위반 여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이번 조치의 기폭제가 된 사고는 지난 4일 발생했다. 포스코이앤씨가 시공을 맡은 광명~서울고속도로 연장공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의 30대 노동자가 지하 18m 펌프 점검 중 감전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 불과 엿새 전인 지난달 28일 경남 함양~울산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천공기에 끼어 숨지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직후였기 때문에 파장이 더욱 컸다. 당시 사측은 전사적 안전점검을 완료했다고 밝혔지만, 점검 당일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면서 점검을 제대로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6일 송치영 포스코이앤씨 신임 대표 내정자가 작업자가 중상을 입고 의식불명에 빠진 사고가 발생한 경기도 광명시 포스코이앤씨 고속도로 건설공사 현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올해 들어 포스코이앤씨 현장에서만 이미 다섯 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1월 김해 아파트 공사장 추락사, 4월 광명 신안산선 붕괴, 대구 주상복합 추락사 등이 줄줄이 이어졌고, 최근 함양과 광명 사고까지 포함되면서 포스코이앤씨는 ‘산재 다발 기업’이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연이은 인명사고에 정희민 당시 사장이 사의를 밝혔고, 포스코홀딩스 송치영 부사장이 신임 사장으로 내정돼 사태 수습에 나섰다.이재명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해당 사안에 대해 직접 공개 질타했다. 그는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사람 목숨을 작업 도구로 여기는 것이 아니냐”며 “같은 방식의 사고가 반복되는 건 법률적으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6일에는 “건설면허 취소, 공공입찰 금지 등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하라”며 강경 대응 기조를 천명했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휴가가 끝난 이후에도 강력한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정부가 이처럼 강경히 대응하는 배경에는 ‘산재 공화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오명이 자리하고 있다. 노동부가 올해 4월 발표한 ‘2024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총 827명에 달한다. 하루 평균 2.3명이 산업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셈이다. 특히 이 중 건설업 사망자는 328명으로 전체의 39.7%에 이르러 업종 중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사고 유형을 살펴보면 떨어짐(278명), 끼임(97명), 부딪힘(80명) 등 이른바 ‘후진국형 사고’가 여전히 산업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이앤씨와 같은 대기업 현장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사고들은 기존 제도와 처벌만으로 산업안전을 확보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외국과 비교하면 한국의 산업안전 수준은 더욱 열악하다. 2021년 기준 국내 산재 사망만인율은만 명당 0.43명으로 OECD 38개국 중 34위에 머물렀다. 이는 영국의 1970년대, 독일·일본의 1990년대 수준에 해당하는 수치다.’산재 공화국’ 오명 벗는 계기될까…”중장기적 대책도 함께 나와야”이러한 배경에서 정부는 단순한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수준의 제재를 넘어, 기업의 경영상 손실을 유발하는 강도 높은 조치로 방향을 틀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회사가 위험 회피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대가가 실질적 불이익으로 돌아가도록 제도를 운용할 것”이라며 “강제력은 없지만 기업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하지 않으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경각심을 주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현재 노동부,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는 건설면허 취소 및 공공입찰 제한 조치를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건설사 등록 말소는 원칙적으로 관할 지자체의 권한이나, 중대한 사고가 발생하면 정부 부처가 이를 요청할 수 있다. 다만 등록 취소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상당한 행정 절차가 필요하며, 기업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경우 효력이 정지될 수 있는 한계도 있다. 지금까지 건설업 면허가 실제로 취소된 사례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당시 동아건설산업 한 건뿐이다.2022년 광주 아이파크 붕괴 사고 직후 국토부는 부실시공으로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면 면허를 곧바로 말소할 수 있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했다. 다만 당장 이번 사안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공 입찰 제한 역시 현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경우에만 국한돼 있는데, 조달청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까지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 같이 정부가 제재를 검토하는 것 자체로도 기업 경영진에게는 실질적인 경고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서울사이버대학교 안전관리학과 강태선 교수는 “대통령의 메시지는 의미 있고, 기업을 바짝 긴장시키는 효과가 있다”며 “면허 취소나 공공 입찰 제한은 수주 활동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산업계 전반의 체질 개선을 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강 교수는 단기적 처벌만으로는 반복되는 사고를 막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금은 법을 지키려는 노력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지만, 업종별·직종별 안전기준이 부족하다”며 “예를 들어 영국은 비계 작업처럼 고위험 직종에 대해 자체 협회가 현장 맞춤형 규범을 만든다. 우리도 시공·품질 기준처럼 노동안전 기준을 직능조직이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단기적으로는 ‘벌주기 정책’이 필요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안전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중장기 전략에는 법령 개정, 행정조직 개편, 업종별 공론장 마련 등이 포함돼야 하며, 노동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