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서울=뉴시스] 홍찬선 기자 = 호남선과 전라선의 KTX 증편 요구가 정치권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호남 지역에서는 “KTX를 타려면 최소 2주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좌석난이 심각하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이에 호남권 의원들은 “경부선에 비해 호남선은 좌석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증편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타당해 보이는 이 주장, 들여다보면 문제의 핵심은 ‘지역 차별’이 아니라 ‘물리적 한계’에 있다.
실제 KTX 증편 요구는 호남선뿐 아니라 경부선에서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노선별 KTX 운행 횟수는 수요, 가용 차량, 그리고 선로에 투입할 수 있는 최대 열차 대수(선로 용량)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현재 하루 평균 KTX 운행 횟수는 경부선 115회, 호남선 55회다. 좌석 수도 경부선이 약 9만9000석, 호남선이 3만7000석으로 2.6배 차이가 난다. 주말 증편 규모를 봐도 경부선은 21회, 호남선은 1회에 그친다.
KTX 하루 평균 이용객은 경부선이 12만1000명으로 승차율 67.1%, 이용률 113.6%를 기록했다. 반면 호남선은 3만5000명 수준으로 승차율 60.5%, 이용률 92%다. 경부선의 수요가 훨씬 높은 셈이다.
하지만 증편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한 수요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충북 오송에서 경기 평택까지 이어지는 46.9㎞ 구간이다. 경부선과 호남선 열차가 모두 이 구간을 통과하는데, 이미 하루 179회(▲KTX 119회 ▲SRT 60회)의 운행 슬롯이 포화 상태다. 사실상 한 대의 열차도 더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2019년부터 ‘평택~오송 2복선 건설’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올해 6월 기준 공정률은 22%에 불과하다. 당초 목표였던 2024년 완공은 사실상 무산됐고, 현재로선 2027년 말 이후에야 완공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호남선 증편 요구는 의지보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있다.
차량 부족도 문제다. 현재 국내 고속열차는 총 86편성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20년이 넘은 KTX-1이다. 신규 차량 확보를 위해 2017년과 2019년 두 차례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됐지만, 모두 ‘수요 부족’ 판정을 받아 무산됐다. 결과적으로 노후 차량은 계속 운행 중이고, 신규 투입은 지연되고 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호남선 좌석 부족 문제는 단순히 영·호남의 차별 문제가 아니다”라며 “전국적으로 철도 인프라가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번 논란의 초점은 ‘누가 더 적게 받았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막혔느냐’에 있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지역 간 편 가르기가 아니라, 고속열차가 달릴 수 있는 선로 용량을 늘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