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박주연 기자 =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어요.”
최근 만난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사람들을 만나면 요즘 금융당국 개편 이야기만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와 여당은 현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체제를 재정경제부·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나누는 금융당국 개편을 추진 중이다. 18년만의 금융감독체계 대수술이다.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의 일관성을 확보하고 금융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취지지만 논란은 뜨겁고, 속도는 더디다.
당정은 당초 내년 1월 2일로 조직개편 시한으로 못박았지만 야권에 발목이 잡혔다.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한다해도 상임위에서 180일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해 현실적으로 내년 4월 이후에야 법안이 처리될 수 있다.
내부 사정도 녹록지 않다. 금융당국은 ‘자중지란’ 상태에 빠졌고, 조직간 갈등, 내부 다툼에 이어 시장감독 공백 우려까지 겹쳤다.
금감원 직원들은 금소원 분리, 공공기관 지정에 강하게 반발하며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직 이탈 가능성에 더해 총파업까지 거론된다.
금융위에서도 상당수 직원이 재경부(세종)으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되며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는 최대한 많은 인원·권한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와 반대 의견이 부딪히며 내부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금융위 1급 간부들과 금감원 임원들의 일괄 사표 소식까지 전해지며 불안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감원장이 ‘원팀’을 강조하며 조직 안정화에 나섰지만 금융권 전체가 긴장 속에 흔들리는 상황이다.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개편과정이 길어지고 내홍이 짙어지면 정책 추진력 약화와 시장 불안이라는 이중의 대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새정부 들어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왔다. 주택담보대출을 6억원 이하로 제한하는 6·27 가계부채대책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극찬을 끌어냈고, 사상 최대규모의 신용사면, 배드뱅크 등 소상공인·취약계층 빚 탕감 등 서민금융 행보도 눈에 띄었다.
앞으로의 과제는 더욱 무겁다. 가계와 부동산에 집중된 금융권의 자금을 모험자본으로 돌리는 생산적금융은 금융위의 대표적 과제다. 대통령의 공약인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해 불공정 거래 감시 강화, 규제·감독 투명성 확보, 투자자 권익 강화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조성, 석유화학 구조조정, 롯데카드 사태로 허점을 드러낸 금융권 보안 강화도 금융당국의 손을 거쳐야 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감원장은 거센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고, 내부 갈등을 좁혀가며 정책 추진력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를 받아안았다.
중요한 것은 조직을 어떻게 쪼개느냐, 몇명이 남고, 몇명이 가느냐가 아니다. 정책과 감독을 제대로 하기 위한 디테일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소통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협상하고, 균형을 맞춰가야 한다.
그래야 금융시장의 신뢰를 지키고 생산적금융과 서민금융 등 새 정부의 과제를 흔들림 없이 이어갈 수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 어지러움 속에서 현명한 숙의를 이어가길, 그래서 대한민국의 금융감독시스템이 한층 더 앞으로 나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