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왼쪽부터 김남윤, 남상아, 성기완. 3호선 버터플라이 멤버들 (사진 = 오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9.07.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지난달 3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2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마지막날,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는 다시 발굴됐다.
국내 인디 신(scene) 시간의 지층에서 묻혀 잠시 잊고 있던 소리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아슬아슬 타고, 끈적끈적하지만 몽롱한 여름밤의 황홀경에서, 회한의 찰나들이 담긴 정경을 다스렸다.
남상아의 몽환적 보컬과 느릿하면서도 맵시 있고 섹시한 리듬, 기타리스트 겸 시인 성기완의 지적이면서도 사이키델릭한 기타, 중독성 강하고 탄탄한 프레이즈를 구사하는 베이시스트 김남윤의 호흡은 3호선 버터플라이 인장과도 같은 꿈결같은 영롱함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2000년 데뷔 앨범 ‘셀프 타이틀드 업세션’, 2002년 MBC TV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OST, 2013년 ‘제10회 한국 대중음악 시상식’에서 3관왕을 차지한 ‘드림토크’ 등을 기억하는 올드 팬들의 감흥이다.
사실 펑크가 큰 흐름의 본류를 차지한 시절, 3호선 버터플라이는 인디 신 바깥으로 분류돼 왔다. 2000년대 전후반 인디 신의 새로운 흐름을 형성한 ‘강아지 문화예술’에서 활약한 이들은 좀 더 허무적이고 좀 더 고독하고 좀 더 철학적인 무엇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해왔다.
이런 지류의 분위기는 3호선 버터플라이를 미스터리한 밴드로 만들었다. 최근 밴드 열풍에 힘 입어 젊은 층이 밴드 음악을 본격적으로 디깅하면서 목도한 새로운 풍경이 된 셈이다. 지적이면서 대안적인 멜로디와 노랫말의 뒤늦은 당도, 국내 밴드 여성 프런트 피플의 계보의 최상단에 있는 주인공 중 한명인 남상아의 재림이 이뤄낸 하모니가 펜타포트를 통해 울려 퍼지면서 하나의 단편적 시대 현상이 됐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정규 5집 ‘디바이디드 바이 제로(Divided By Zero)'(2017) 이후 8년 만인 최근 발매한 새 EP ‘환희보라바깥’은 이에 대한 징표 중 하나다. 제목처럼 무지개가 끝나는 지점을 노래한 이 음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라 바깥’에 분명 존재하는 빛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우리를 감싸는 새로운 환희를 그려내는 앨범인데 그건 밴드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된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거대한 서사나 직접적인 메시지보다는, 소리 자체를 통해 하나의 장면을 청각적으로 구현하려는 공감각적인 시도를 이어왔다. 이번 EP 역시 듣다 보면 청자는 그 정경 안 한 가운데로 어느새 들어가 있게 된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이번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기점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남상아, 성기완, 김남윤 3인 체제로 다시 나섰다. 성기윤은 2016년 탈퇴 이후 9년 만에 팀에 합류했고, 밴드는 2019년 콘서트를 끝내고 6년 만에 복귀했다. 프랑스 니스에서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 중인 남상아는 남편의 외조 덕에 잠시 손님 대신 관객을 맞고 있다.
모든 시간을 같이 하지 않아도 지속가능성을 증명하는 이 밴드의 특성은 다른 밴드들에게 하나의 좋은 보기가 된다. 이들은 13~14일 서울 홍대 앞 무신사 개러지에서 ‘환희 보라 바깥’ 발매 기념 공연을 열고, 현재 진행형의 그 무엇을 보여준다. 다음은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멤버들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
-펜타포트 무대 보고 울었다는 증언을 하시는 분들이 한 두 명이 아닙니다.
“기쁨을 드려야 되는데 우셔서 안타깝긴 하네요. 하하. 그런 반응 자체가 저희한테는 감격스럽죠. 저도 울컥했어요. 이렇게까지 반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거든요. 남상아 씨야 또 홍대 디바니까 당연히 ‘이 정도는 뭐…’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진짜 몰랐습니다. 특히 상아 씨가 ‘스모크핫 커피리필’을 조용한 목소리로 ‘탁’하고 들어갈 때 울컥했어요. 이제 ‘사뿐하게 시작하는구나’ 생각이 들어 이 노래를 첫 곡으로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뭉근하게 퍼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설렘을 더 고조시키는 게 있거든요.”(성기완)
“후반부에 부른 ‘다시 가 보니 흔적도 없네’ 터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관객 분들이 모두 점핑을 하고 계시는데 그 때 소름이 돋았어요. 고양감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환희는 믿을 수 없었죠. 개인적으로 특히 재미있었던 건 젊은 친구들도 되게 많더라고요.”(남상아)
“첫 곡 ‘스모크 핫 커피 리필’에서 상아 누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터진 환호,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오랫동안 기다려온 듯한 관객들의 함성에 저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김남윤)
-최근 밴드 문화를 좋아한 젊은 친구들이 ‘이런 팀이 있었대. 너무 궁금하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3호선 버터플라이’가 신비로운 팀으로 여겨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펜타포트에 등장한다고 하니까 더 기대를 했더라고요.
“신비 마케팅 하려고 일부러 6년이나 쉰 건 아닙니다. 하하. 사실 작년부터 계속 공연 제안들이 들어왔어요.”(성기완)
-버터플라이로 다시 뭉치기로 하시고 처음 대면하셔서 나눴던 말씀이 있어요?
“기억이 안 나네요. 그냥 벅찼던 것 같아요. 서로 많이 그리워 했었으니까요. 오빠의 빈자리를 다시 오빠가 와서 채우니까 너무 좋았어요.”(남상아)
-기완 씨 없이 만들었던 정규 5집 ‘디바이디드 바이 제로(Divided By Zero)’는 일렉트로닉 색깔이 짙어잖아요. 이 음반은 3호선 버터플라이에게 어떤 의미가 됐나요?
“5집에서는 기타를 과감히 뺄까도 생각했어요. 대신에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모두 채울까도 했었어요. 기완 형이 떠난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이 컸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시키는 큰 밑거름이 되었죠. 돌아보면 그것이 기완 형이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김남윤)
-이번 앨범은 더 장르가 다양합니다.
[서울=뉴시스] 3호선 버터플라이. (사진 = 펜타포트 사무국 제공) 2025.08.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들어간 곡도 있고, 옛날 감성의 발라드도 있고, ‘역시 3호선 버터플라이야’라고 느낄 만한 곡들도 있어요. 항상 그래온 것처럼 여러 가지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앨범이 나왔습니다.”(남상아)
-이번 음반에서 가장 중요하게 내세웠던 사운드의 질감, 분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항상 편곡을 할 때 곡의 정체성을 먼저 고민합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보컬이 있습니다. 상아 누나의 목소리는 곡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고, 때론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해요. 그래서 제 역할은 늘 그 보컬을 가장 잘 받쳐주는 질감을 찾는 것입니다. 사운드는 보컬을 압도해서도, 반대로 빈약하게 흘러가서도 안 됩니다. 결국 음악은 보컬과 반주가 서로를 감싸며 균형을 이루는 순간, 비로소 그 곡의 매력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김남윤)
-6년 동안 좀 뭐가 가장 그리우셨어요.
“역시 음악 만드는 것과 무대요. 음악 만들 때는 리듬감이 핑퐁처럼 서로 왔다 갔다 주고 받고 하잖아요. 그런 피드백들이 녹음할 때 즐거움이거든요. 무대는 그동안 저희가 연습해온 걸 짧은 시간 동안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로 인한 응축된 시간을 관객들과 피부, 공기로 느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아요. 공연하는 장면들이 그간 꿈에도 많이 나왔어요. 가사가 기억이 안 나거나, ‘이 코드가 아닌데…’라고 생각하거나. 현실적인 내용들로 계속 꿈을 꿨어요. 무의식적으로 되게 그리워했던 것 같아요.”(남상아)
-그럼 반대로 지금이 오히려 꿈같이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완 오빠랑 작업을 다시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고, ‘앨범 하나는 꼭 하자’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 줄 진짜 상상도 못했죠. 아직도 믿어지지 않고 이상해요.”(남상아)
-앨범 작업을 같이 하셔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기점 같은 게 있었어요.
“일단 상아는 프랑스에 살고 있고, 거기 운영하는 식당 일 때문에 바쁘잖아요. 소통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해야 하니까 저랑 김남윤 씨랑 어떻게 꾸려나갈까 같은 얘기를 하는 와중에 ‘노래들을 새로 좀 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들어놓은 곡들을 들려줬는데 의외로 좋아하는 거예요. 이후 단톡방에서 데모를 주고 받으며 논의를 했죠. 늘 그렇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물꼬가 합류하는 거 같아요. 저희는 아이돌처럼 합숙해서 연습을 하거나, 1초를 다 따지면서 무대에 서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계기는 역시 펜타포트죠. 원래 작년 봄쯤에 펜타 쪽에서 그 해 무대에 설 수 있는지 의사를 타진해왔어요. ‘그건 힘들 거 같다’고 답 했고, ‘그럼 여유 있게 그럼 1년 후 한번 생각해 보시죠’라는 말이 돌아왔죠.”(성기완)
-‘펜타포트’ 세트리스트가 호평을 받았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즐겁게 놀 수 있는 곡들은 다 넣자가 기본이었고요. 저희가 오랫동안 불렀던 ‘꿈꾸는 나비’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은 꼭 넣고자 했고요. 그러면서 앞 뒤 흐름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몇 번이라 수정했어요. ‘꿈꾸는 나비’는 너무 추억이 아닌가 걱정돼 안 하려고 했는데, 펜타포트 측에서 또 연락이 왔어요. ‘꿈꾸는 나비’를 안 하면 어떻게 하냐고. 결국 넣었는데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시더라고요.”(성기완)
-이번 펜타포트 최고의 장면에 펄프의 ‘커먼 피플’하고 3호선 버터플라이의 ‘꿈꾸는 나비’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하. 기완 씨는 3호선 버터플라이를 떠난 이후 부채감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이번 합류로 그 부채감이 덜어진 느낌이 드세요?
“한 번에 덜어진 것 같지는 않고요. 그동안 활동을 못하게 된 어떤 사정이 있었겠지만, 제가 이렇게 제 마음대로 나와버린 것도 동력을 가져가지 못하게 된 큰 원인인 것 같아서 마음의 짐이 있었어요. 이번에 그걸 풀 기회가 생겨서 최선을 다했죠. 이미 한 식구인데 ‘이번에 했으니 다음부터는 식구 안 해도 돼’는 아니잖아요.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계속 다하자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존재하는 동안은 계속 함께 하고 싶다’ 같은 마음이 더 깊어졌어요.”
-상아 씨는 리더였던 기완 씨가 팀을 나간다고 했을 때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충격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밴드이기도 했지만 리더가 팀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사실 당혹스러웠어요. 그런 살다 보니까 이해가 돼요. 밴드라는 게 삶의 압축판 같은 거잖아요.
“결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쌓이는 것들이 생기고 서로 마음 아프게 하는 것처럼, 밴드도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떨어져 있게 된 게, 전 사실 그게 잘 된 거 같고요. 그때 계속 같이 했으면 더 안 좋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그런 시기였죠. 각자의 삶을 사는 동안에도 언젠가는 기완 오빠를 다시 볼 거라고 생각했어요.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밴드 동료로서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남상아)
-전 밴드는 신념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팀의 신념뿐 아니라 각자의 신념을 음악에 투영해야 하니까 안 싸울 수가 없을 거 같아요. 3호선 버터플라이는 그런 걸 인정하면서 오히려 밴드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이게 다 팔자인데… 누가 붙잡고 어떻게 하고 했으면, 더 깨졌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영화 제목 중에 ‘떠날 때는 말없이’가 있잖아요. 팀을 떠난 이후 일언반구 하지 않았어요. 온전하게 잘 꾸려나가고 있으니까 그걸 존중하는 의미도 있고요. 너무 확실했던 공백 기간이 스펀지 같이 푹신한 시간들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공백 기간 동안에 이상한 상처들이 있으면 아스팔트처럼 울퉁불퉁하게 돼 그 시간 자체가 아픈데, 덕분에 이번 공백은 푹신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전까지 연락하지 않다가, 상아가 프랑스로 떠나기 직전 마지막 인사를 했거든요. 주변 뮤지션 친구들이 떠나는데 인사는 해야하지 않겠냐고 권유도 했거든요. 그 때 끈이 남아서 이어진 거 같기도 해요. 마지막 인사가 없었으면 끈이 끊어졌을 수도 있죠.”(성기완)
-울컥하고, 뭉클하네요. 상아 씨는 그 때 어땠나요?
“프랑스로 가기 전 오빠랑 인사할 수 있어서 ‘짚고 가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좋았어요. 그때 인사를 안 했으면, 프랑스에 있는 동안에도 오빠에 대한 생각을 덜 했을 거 같아요. 누구도 의도하지 않게 삶이 흘러갔고 그렇게 된 일들이라 더 겸손해지고, 감사한데 괄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괄호 안에 누구를, 무엇을 넣어야 할 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우리 삶 덕분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나이가 먹으니 또 그런 게 보이네요.”(남상아)
-올해 데뷔 25주년입니다. 3호선 버터플라이가 이렇게 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울=뉴시스] 3호선 버터플라이 EP '환희보라바깥'. (사진 = 오름 엔터테인먼트 제공) 2025.08.28.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사실 우리 각자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함께할 때 비로소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시너지가 생기죠. 저는 오히려 그 결핍이 우리 밴드를 오래도록 성장하게 만든 힘이라고 믿습니다.”(김남윤)
-올해는 인디 30주년이기도 한데요. 밴드 열풍이라는 말이 요새 나오는데 이 말에 대해 동의 혹은 실감하시나요?
“신기할 따름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밴드 음악은 죽었다고,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들 했죠. 그런데 세대가 바뀌면서 주류와 비주류가 뒤바뀌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음악은 언제나 젊은이들의 문화이고, 20대의 문화는 늘 기존의 주류를 뒤집는 힘을 가지고 있죠. 저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음악을 하고 있을 뿐인데, 분위기가 달라진 건 분명하네요.”(김남윤)
-그 가운데 3호선 버터플라이도 몸 담았던 ‘강아지 문화예술’이라는 레이블도 인디 문화의 다양성이 큰 기여를 했어요. 인디 신 초창기 다수였던 펑크(punk)와 다른 세련되고 지적인 무엇을 만들어주셨죠.
“홍대가 다크하고 어둡고 약간 반항적인 분위기였다면, 강아지 문화예술은 깔끔하고 밝은 분위기였어요. 쾌활한 음악들도 꽤 있었고요.”(성기완)
“(남상아가 몸 담았던) 허클베리핀 1집을 그곳에서 녹음하면서 되게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엔지니어 분들도 온 힘을 다해서 녹음을 해주셨던 것 같아요. 저희도 그때는 첫 앨범이었으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있어서 욕심도 많이 내고 그랬는데 그걸 다 받아들여 주셨죠.”(남상아)
-상아 씨와 기완 씨는 어떻게 함께 하시게 된 건가요?
“26년 전인가, 27년 전 즈음에 신촌에 라이브 소극장 벗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지금은 없어졌어요. 당시 강아지 문화예술에서 합동 공연 비슷한 걸 진행했는데요. 전 그 때 ’99’라는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허클베리핀이라는 밴드가 있는데 멋있다. 게스트로 섭외하자’는 얘기를 했죠. 그 때 상아 씨를 처음 봤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각기 개성이 다른 분들이 만나서 가장 컸던 시너지를 무엇이었습니까?
“오빠는 흑인 음악을 그때부터 좋아했어요. 저는 당시만 해도 흑인 음악을 듣는 건 좋아하지만 제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할 수도 없었고요. 음악 안에 들어있는 어떤 요소, 즉 엑기스를 좋아하는 측면이 비슷한 거 같아요. 둘이 얘기를 하다보면, 좋아하는 곡이 거의 비슷하거나 아니면 제가 좋아하는 걸 다 좋아하시고 제가 싫어하는 건 별로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게 있어요. 그래서 그런 음악적인 색깔, 태도가 비슷했던 것 같아요.”(남상아)
“상아가 흑인 음악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클럽에서 춤추는 건 좋아해요. 클럽에서 나오는 춤들이 리드미컬 하잖아요. 홍대 앞에서 공연하고 다른 멤버들은 다 집에 갔는데 저랑 상아만 새벽까지 클럽 nb에서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놀 때도 리듬감을 숨기지 않고 있었던 거죠.”(성기완)
-개인적으로 거칠게 나눴지만 3호선 버터플라이의 멋은 상아 씨, 정신은 성기완 씨, 태도는 남윤 씨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웃음) 제 생각엔 상아 누나는 ‘눈’, 기완 형은 ‘머리’, 저는 ‘발’로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큰 그림은 기완 형이 그려주고, 저는 그 그림을 실천하며 발빠르게 움직이죠. 그리고 그 모든 걸 완성하는 건 결국 상아 누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의 화룡점정, 완성의 눈처럼 말이죠.”(김남윤)
-최근 젊은 세대 중심으로 부는 밴드 열풍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젊은 세대들이 다양한 밴드를 찾아 거슬러 거슬러 가다가 신비스러운 3호선 버터플라이까지, 찾게 되는 거 같아요. 구전으로만 들어온 전설적인 팀을 마침내 발굴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할까요? 특히 요즘 걸그룹을 여성 팬들이 더 좋아하는데, 상아 씨의 아우라에 젊은 여성 음악 팬들이 더 끌리는 거 같기도 하고요. 펜타포트 때 실리카겔의 김한주 씨가 키보드 연주자 객원 멤버로 함께 한 것도 크게 화제가 됐고요.
“한주 씨는 저희랑 오래 했죠. 서로 도움을 많이 주고 받았어요. 또 음악을 잘하잖아요. 이번에 세션 분들이 다 젊거든요. 정규 멤버가 평균 나이 50대라면 거기 그쪽 평균 나이는 한 30대 초반?”(성기완)
-젊은 연주자들에겐 3호선 버터플라이와 함께 한다는 게 대단한 영광이고 훈장이잖아요. 단독 콘서트는 어떻게 꾸미실 예정입니까?
“신곡 5곡을 다 연주를 할 거고 러닝타임도 길고 여유롭게 할 수 있으니, 앙코르도 많이 할 예정이에요. (3호선 버터플라이와 펜타포트 같은 날 헤드라이너로 공연한) 벡을 보니까 레퍼런스가 되더라고요. 벡이 막바지 앙코르에 8곡인가, 9곡을 했는데 그걸 다 들으려면 끝까지 있어야 하는 거죠.”(성기완)
-정규 6집도 벌써 기다려집니다. 무엇보다 이번에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밴드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주셨다는 점이 크게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근데 저희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3호선은 알 수가 없어요. 마음 같아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은 드는데 억지로 만들어가는 구조는 싫고요. 계속 한 곳에서 지지고 볶고 하면 더 힘들 수 있는데 상아가 니스에 있는 것이 밴드를 운영하는 시스템에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잠시만 안녕’하는 것이 우리 최고의 내러티브가 될 수 있죠.”(성기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