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김근수 기자 = 노만석 대검찰청 마약 조직범죄부장이 17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서 열린 제5차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02.17. [email protected][서울=뉴시스] 이종희 기자 =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놓고 여권과 검찰이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권은 검찰 권력을 분산하기 위해 보완수사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밝힌 반면 검찰은 보완수사권이 검찰의 의무라며 반발하고 있다.
보완수사권은 문재인 정부 때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신설됐다. 검찰의 수사권을 제한하는 대신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을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하거나 보완수사를 하도록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여당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보완수사요구권으로 부작용 최소화
5일 여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유지할 경우 사실상 수사권을 가질 수 있어 검찰의 무소불위 권력이 그대로 유진된다고 보고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여당은 사실상 수사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완수사요구권은 남겨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국가수사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개별 기관의 권한과 기능 등을 규정하는 후속 법안은 당정 협의를 거쳐 추진할 예정이다. 보완수사권 폐지 여부는 정부조직법 개정 이후에 논의될 예정이다.
여당과 경찰은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하고 보완수사 요구권만 남겨도 예상되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검사의 보완수사권을 폐지해도 경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는 여러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고 주장한다.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1일 ’10중 통제 프로세스’를 언급하며 “(검찰 개혁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차원이기 때문에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는 보완수사 요구권으로 일원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검찰개혁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았던 김용민 의원은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로 우려되는 여러 문제는 발생할 가능성이 낮거나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기관이 기소해달라고 송치했는데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하면 수사기관 입장에선 적극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완수사권 대신 검사에게 ‘기소 전 조사권’을 부여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개혁 대상인 검찰 보완수사권은 검찰의 의무…폐지 반발
개혁 대상으로 찍혀 숨죽이던 검찰은 “보완수사는 검찰의 권한이 아닌 의무”라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형사사법체계의 큰 변화를 가져오고 국민 편익과 직결되는 사안이라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지난 4일 부산고검·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적법절차를 지키면서 보완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은 검찰의 권한이 아니라 의무”라고 밝혔다. 노 대행은 한국일보 통화에서도 “보완수사를 권한으로 보고 폐지 여부를 논하고 있지만, 사실은 검찰의 가장 본질적 의무라고 생각한다”면서 “선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면 통제할 시스템을 만들어야지 보완수사 자체를 폐지하면 순기능까지 사라질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검찰은 이재명 정부에서 개혁 대상으로 지목돼 검찰청 폐지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등 여권의 공세에도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의 존재 이유와 직결되는 보완수사권 폐지까지 거론되자, 노 대행이 검찰을 대표해 직접 목소리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행은 이어 “현재에는 현재의 상황에서, 미래에는 미래의 상황에서 국민을 범죄로부터 지키기 위해 우리의 의무를 다하자”고 강조했다.
검찰총장 공석 상태에서 사실상 검찰 조직을 이끄는 노 대행이 공개적으로 보완수사권 폐지에 목소리를 내면서 논쟁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내부에서도 공개적으로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다.
안미현 서울중앙지검 검사는 최근 검찰 내부망에서 자신이 직접 구속 취소를 했던 사건을 예로 들며 “보완수사로 피의자가 억울하게 성범죄자라는 누명을 쓴 사실을 밝혀 구속 취소하고 허위 신고를 했던 여성을 무고죄로 기소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고 말했다.
안 검사는 “이제 저런 사건의 경우 검사는 직접 2차적 보완수사를 할 수도 없고 다른 수사기관에 보완수사를 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며 “이대로라면 피해를 보는 국민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강수산나 서울서부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는 “검사실의 수사와 보완수사가 금지된 상황에서 ‘공소유지’는 도대체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며 “공판단계에서도 검사를 새로운 증거를 신청할 수 없고, 경찰 수사기록만으로 공소유지를 해야 한다면 검사 제도 자체가 불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
김지혜 제주지검 형사1부 검사도 “개인적으로 검찰의 수사 개시권 폐지에 동의한다”면서도 “보완수사요구나 직접 보완수사 폐지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과 법조계 안팎에선 보완수사권이 폐지될 경우 검경 간 ‘사건 핑퐁’ 문제와 수사 지연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수사의 질도 떨어질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기존에는 검찰이 경찰의 수사에 의문이 있을 경우 직접 보완수사를 통해 기소 여부를 결정했지만,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 수사에 의문점이 있어도 다시 경찰로 재송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경찰에 수사에 대한 견제 장치가 사라져 사법적 통제 차원에서 보완수사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전날 성명을 통해 “수사·기소 분리 원칙에는 동의하지만, 경찰의 불송치 전횡을 견제할 장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전건 송치가 배제되고 송치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 권한마저 축소하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형사사법 체계 변경이 장기적으로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는 만큼 충분한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을 신설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을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이후 후속입법을 통해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문제를 다룰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