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강원래. (사진=강원래 인스타그램 캡처) 2025.09.02.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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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재경 기자 = 1990년대 그의 몸짓 하나하나는 곧 대한민국의 유행이었다. ‘꿍따리 샤바라’ ‘초련’ 등 시대를 관통한 히트곡으로 아시아를 호령한 ‘클론’의 강원래(56).
2000년 불의의 사고로 휠체어에 앉게 된 뒤에도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방송과 라디오를 종횡무진하던 그가 최근 대중 앞에 또 다른 이름으로 섰다. ‘강원래 박사’.
그는 지난달 명지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저 종이 한 장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이는 학부 시절부터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공부하며 얻은 결실이었다.
그의 박사 논문 제목은 ‘케이팝 아이돌 연습생 양성 체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K팝의 가장 빛나는 현재를 만든 1세대가 그 화려함의 이면을 정면으로 파고든 것이다. 강원래에게 지난 1일 전화를 걸었다.
교수하려고 박사 학위? 관심 없어
-박사 학위 받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학위 받을 때는 그냥 뭐라고 써 있나 확인했죠. 그러곤 ‘내가 이거 하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더라고요. 한 장 종이일 뿐이니까. 그러면서도 ‘그래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수업 듣고, 숙제하고, 발표하고…라디오 마치고 곧장 학교로 달려가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가족들도 많이 기뻐했을 것 같은데요.
“잘 몰라요. 박사 딴 건 아는데,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고. 제가 어느 학교 다니는지도 얘기를 안 하니까. 제 성격이 그래요. 예전에도 ‘클론’ 콘셉트가 뭐예요? 그러면 ‘됐어요, 왜 물어봐요? 나중에 보고 하세요’ 이런 스타일이에요. ‘어떻게 만들 겁니다’ 그런 건 없어요(웃음).”
-스스로 자랑스럽지 않았나요?
“자랑스럽지만 좀 부족하죠. 정답을 말한 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의 의견일 뿐이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사학위에 도전한 이유가 뭔가요?
“90년대에 저는 안무가로 김건모·신승훈·노이즈·박미경·박진영·듀스·엄정화 등등 거의 모든 가수와 작업했어요. 그런데 요즘 K팝 안무하는 친구들을 보니 역사를 잘 모르더라고요. ‘이걸 글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시인 김춘수의 ‘꽃’처럼, 춤도 불러주고 기록해줘야 역사가 남는 거예요.”
-또 다른 이유는?
“TV를 보는데 스트리트 댄스계 어떤 친구가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저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 친구를 무시하려는 건 아니지만, 순간 ‘나는 잊혀져 가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얼굴이 알려진 제가 박사학위를 받으면 그 친구와 더불어서 춤 쪽에서 더 정답에 가까운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이제 저는 실전에서 춤을 출 수 없으니, 지나온 흔적이라도 정리하고 싶었어요.”
-대학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요?
“그런 거 없어요. 교수에 대한 환상이나 권위에 관심이 없어요. 저는 넘버1보다 넘버2, 넘버3가 좋아요. 현장에서 춤 얘기하는 행동대장 역할이면 몰라도 전담 교수는 마음이 안 가요.”
그는 과거 나사렛대·한중대에서 겸임교수로 교양 강의를 맡았고, 현재 명지대에서 대중스포츠예술 교양 과목을 강의 중이다. 포털 사이트에 ‘대학 교수’로 소개되는 것에 대해선 “그건 걔네가 써 놓은 것일 뿐”이라며 웃었다.
생각 없는 연습생들 안타까워 [서울=뉴시스]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강원래의 모습. (사진=강원래 인스타그램 캡처) 2025.09.02.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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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글쓰기였다.
“머릿속엔 댄스에 대한 생각이 다 있는데, 그걸 글로 정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논문 쓸 때 지도교수님이 ‘편지 쓰냐? 논문 용어로 딱딱하게 써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살면서 제대로 써본 글이 편지밖에 없었거든요(웃음).”
“또 김완선이라든가 엄정화라든가 이런 친구들 만나 가지고 인터뷰하면서 이야기를 듣고, 중간자 입장에서 정리해 글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공부하면서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나요?
“저는 싫은 걸 안 해요. 그래서 스트레스가 없었어요. 저는 애초에 제가 재미있어 할 주제만 골랐습니다. 어떤 뮤지컬에 ‘네가 좋아하는 삶을 살든가, 네 삶을 좋아하든가’라는 대사가 있는데, 저는 둘 다예요. 좋아하는 삶을 살고, 내 삶을 좋아하죠. ‘힘들다’보단 ‘재밌다’ ‘야, 내가 이런 것도 다 하네. 나 출세했네’ 이렇게 생각했어요. 논문 쓰는 게 스트레스였다면 벌써 죽었죠(웃음).”
-왜 논문 주제로 ‘연습생 시스템’을 택했나요?
“뉴욕에서 범죄율이 줄었던 이유 중에 애들이 길거리에서 춤추게 하면서 줄었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청소년과 연습생을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 청소년들도 춤, 노래, 연기로 학창 시절을 더 재미있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은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시기·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그래서 무대에 서는 댄서나 가수에 대해 연습생들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그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현장에서 연습생을 만나면서 느낀 문제는 뭔가요?
“연습생들이 아무 생각이 없더라고요. 그냥 ‘연예인이 되고 싶으니까 SM·YG 가고 싶다’는 얘기를 해요. ‘야, 정신 차려’라는 말은 못하고, 속으로 ‘넌 안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죠.”
-연습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춤추고 노래하는 걸 하고 싶어서 해야죠. 재미를 붙여야 하는데, 그 ‘재미’가 자기 안에서 정리돼 있어야 해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고 싶은데, 그런 친구들은 한두 명이고 생각 없는 애들이 더 많았어요. 너무 기계적으로 변해 갑니다. 끈기·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말 한마디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아요. ‘떨어지면 뭐 할래?’ 물어보면 대답이 없어요.”
강원래는 멘토의 부재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멘토 없이 방황하는 사이 유행이 바뀌면 꿈도 흔들리고, 기획자는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연습생들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연습생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월급제 도입과 학교 수업과의 병행 보장 등을 개선책으로 언급했다.
다만 그는 논문에서도 특정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았다며 “연습생 시스템에 이런 문제들이 있으니 앞으로 고쳐나가야 한다”는 취지였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이 논문을 계기로 더 많은 연구가 이어지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요즘 아이돌, 춤 잘 추지만…[서울=뉴시스] 클론 구준엽과 강원래. (사진=강원래 인스타그램 캡처) 2025.09.02.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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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래는 댄스가수로 활발히 활동했던 90년대를 떠올렸다.
“그땐 연습생이라는 게 없었죠. 70년대 말까진 가요제 출신이 많았고, 90년대는 길거리 캐스팅이 많았고요. 2000년대 들어서야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가수가 됐어요. SM이랑 저희 클론이 일본에 갔을 때(97~98년) 우리나라 연습생 체계가 벤치마킹했던 곳이 오키나와 액터스 스쿨이었어요. 거기서 아무로 나미에가 나왔고, 그걸 또 벤치마킹하다 보니 보아가 나오고…그런 과정을 제가 다 봐왔죠.”
“전에는 작곡가나 기획자가 데모 테이프 들고 와서 ‘얘네 노래 어때요?’ 물으면 같이 얘기하면서 팀이 만들어져 갔어요. 지금은 부모 개입도 심하고, ‘네가 최근 들어왔는데 왜 돈을 똑같이 나눠?’ 한마디면 팀이 깨져요. 팀워크가 있어야 하는데 아쉬운 점이 많아요.”
-K팝 박사로서 요즘 주목하는 아이돌이 있나요?
“없어요. 논문 때문에 음악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려고 했는데 답답해요. 멜로디, 의상, 쇼 다 똑같아요. 뷔페 가서 중식·한식·양식 맛이 다 똑같은 느낌이랄까.”
“우리 ‘꿍따리 샤바라’는 노래도 단순하고 안무도 쉬웠는데 멋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자연스러움에서 멋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은 ‘우리 멋있게 봐주세요’ 하는 춤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거부감이 들어요. 기계적으로 다 준비돼 있는 느낌. 물론 잘 추긴 잘 춰요. 근데 좀 과한 느낌이 있고…”
그는 아이돌 산업에 대한 바람도 내비쳤다.
“저는 나라에서 아이돌 산업을 더 키우되, 융통성 있게 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K팝 박물관 같은 것도 만들고, 연예인들이 나와 설명도 하고 공연도 하고 그런 상상도 해봤어요.”
앞으로의 꿈을 묻자 그는 “춤 관련 연구를 계속 하고 싶다”며 “특히 안무 저작권을 정립하고 싶다”고 했다.
“음악처럼 안무에도 저작권 체계가 필요해요. 그래야 청소년들이 ‘춤춰서 뭐 하냐’는 소리에 당당히 ‘안무로도 돈 벌고 박수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양현석, 박진영 같은 대형기획사 사장들도 다 댄서 출신이잖아요. 댄서가 자랑스러운 직업이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