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손모은. (사진 = 손모은 측 제공) 2025.08.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대구시립교향악단 창단 멤버인 조부의 연주는 따뜻했다. 다섯 살 때부터 할아버지의 집을 찾아가 연주를 들으며 놀았다. 할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프랑스 기반으로 활동하며 급부상 중인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손모은의 기억과 몸엔 바이올린의 지문이 그렇게 그녀도 모르게 새겨졌다. 거기에 더해 손모은은 바이올린으로부터 소리를 발굴 중이다. 클래식을 연주하는 바이올린으로부터 숨어 있던 재즈의 얼굴을 발견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재즈 바이올린의 거장 스테판 그라펠리의 연주에 감명을 받아 프랑스 유학을 갔던 2012년 이후 손모은은 현지에서 입지를 굳혔다.
2022년 선사이드 재즈 콩쿠르에서 작곡가상 1위와 솔리스트상 2위를 차지했다. 특히 작년 프랑스 라데팡스 재즈 콩쿠르(Concours National de Jazz de La Défense)에서 한국인 최초로 연주자상(Prix d’instrumentiste)을 받았다. 해당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수상한 건, 재즈보컬 나윤선의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이후 25년 만이었다.
이후 라 센 뮈지칼 (La Seine Musicale)의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프랑스의 권위 있는 재즈 클럽인 뒥 데 롬바르(Duc Des Lombards)에서도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활동 중이다.
손모은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푸르지오 아트홀에서 자신의 밴드 ‘모은(MOEUN)’으로 공연하며 재즈가 왜 좋은 음악인지 그 살결을 청자가 직접 느낄 수 있게 했다. 최근 쓴 신곡을 처음 들려준 자리이기도 했다.
명료한 음들은 명료한 음들대로, 불명료한 리듬들은 불명료한 리듬대로 그 불가항력적인 것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재즈의 본질일 텐데 클래식과 재즈에 모두 능한 손모은은 그걸 또 다른 방식으로 가능하게 만든다.
손모은의 국내 공연은 세 번째인데, 이번엔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함께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모은의 핵심 멤버들인 덱스터 골드베르그(피아노)와 로망 하버트(기타)가 이번에 처음 내한했다. 국내 연주자들인 김대호(베이스), 김영진(드럼)이 합류했다. 23일 전주 더바인홀에서 ‘제4회 전주미니재즈페스티벌 ‘스페셜 스테이지”의 하나로 공연했고 24일 오후 5시 대구 베리어스 재즈클럽 무대에도 오른다.
다음은 공연 이틀 전 서울에서 손모은과 만나 나눈 일문일답.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1947년 산 이탈리아 제작 바이올린을 물려 받아 전통을 잇는 동시에 혁신을 병행하는 중이다. 이름은 한글 이름으로, 기도할 때 손을 모으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할아버지가 지었다. 외국 사람들은 모은이라는 발음이 어려워 문(mo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윤선 씨 같은 좋은 보기가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에선 프랑스로 재즈 유학 가는 경우가 흔치는 않아요.
“처음엔 클래식 공부를 하고 있다 보니까, 독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스테판 그라펠리 영상을 보게 된 거예요. ‘나도 저런 음악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고, 한 달만에 다시 프랑스 유학 준비를 해서 현지로 떠났죠. 프랑스 국적의 재즈 바이올리니스트들도 많더라고요. 처음엔 프랑스어를 못했던 지라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영화를 비롯해 프랑스 문화를 너무 좋아하고 에펠탑이 보이는 곳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용기를 냈죠. 처음엔 공부만 끝내고 올 생각이었는데 ‘1년만 더 있어 보자’라는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까 벌써 현지에서 산 지 14년차가 됐어요.”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꿈은 어릴 때부터 변하지 않았던 건가요?
“중학교 2학년 때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어요. 패션에도 관심이 있어서 잡지 에디터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특히 중학생 때 꿈이 많았어요. 근데 음악뿐만 아니라 건축, 패션의 도시이기도 한 파리에 살게 됐네요. 하하.”
-클래식 작곡가는 누구에게 애정을 쏟았습니까?
“어려운 질문인데… 모리스 라벨을 좋아하고요. 19세기 후반 프랑스 작곡가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또 좋아하는 작곡가는 브람스이고요.”
-반대되는 성향의 작곡가들을 좋아했네요. 클래식, 재즈를 동시에 연주하는 것도 그렇고 반대되는 성향의 것들을 아울러서 모은 씨 연주가 더 다채로운 듯해요. 그럼 클래식을 연주하시다가 재즈를 연주하시게 되시면서 느꼈던 감정은 혼란이었나요, 설렘이었나요?
[서울=뉴시스] 손모은. (사진 = 손모은 측 제공) 2025.08.0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처음엔 보잉(활 긋기) 스타일도 달라지고 지판을 짚는 압력도 달라지다 보니까 쉽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사실 현 악기로 스윙을 하는 게 어려워요. 유학 가서도 클래식 공부를 계속 같이 했었거든요. 그런데 전 나눠서 하는 게 오히려 좋았어요. 클래식 음악에서 제가 영감을 받아서 곡을 쓰는 것도 많고, 재즈를 하면서 즉흥으로 자유롭게 연주를 하는 게 또 클래식 음악을 하는데 도움이 됐죠. 다시 말하자면, 클래식 공부할 때는 작곡가의 의도를 해석해서 그걸 관객 분들한테 전달을 드려야 되잖아요. 그런 측면의 ‘완벽한 어떤가’를 만들려고 하는 데서 재미를 느꼈고요. 재즈는 스탠더드를 예로 들면 그 곡을 연주자분이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프랑스에서 클래식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셨던 교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어떤 곡을 연주할 때 마치 너가 즉흥 연주를 하는 것처럼 들리게 연주를 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100% 잘 알고 다 외운 곡이더라도, 제가 새로 발견하고 즉흥 연주하는 느낌으로 연주를 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재즈 공부한 것이 도움이 되죠. 반대로 재즈를 연주할 때는 즉흥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제일 예쁜 소리를 내는 데도 집중을 하는 편이고요. 또 재즈를 할 때는 마이킹을 해야 하고 드럼, 피아노, 베이스 등 다른 악기들도 있으니까 연주를 크게 하는 편이기도 해요.”
-라데팡스 재즈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연주자상을 받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잖아요. 이상을 받고 나서 달라진 것들이 많겠네요.
“프랑스에서 13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고 있는 것들이 많거든요. 제가 현지인이 아니다 보니까 정보를 찾는 것도 사실 쉽지 않고요, 커넥션도 없는 편이고요. 앨범을 낸 이후 ‘저를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콩쿠르를 하면서 페스티벌 관계자분들이랑 커넥션도 생기고 덕분에 레지던스도 했죠. 현지 재즈 관계자분들에게 ‘바이올린 하는 한국인 여성이 있다’라는 사실과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계기였어요.”
-아울러 모은 씨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도 됐네요.
“네 프랑스 관객 분들이 오셔서 이런 질문을 해요. ‘네가 한 재즈가 너무 좋은데 이런 장르는 어떻게 검색을 해야 들을 수 있냐’고요. 근데 저도 잘 모르겠는 거예요. 옆에 있던 멤버들에게 물어보니까 그냥 ‘손모은 재즈’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손모은 프로젝트’가 ‘모은’이 된 거군요.
“네 맞아요. 장르적인 부분에서 절 어떤 카테고리 안에 넣어야 될까 하는 생각을 좀 많이 했었거든요. 콩쿠르에 출전하면서도 뽑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라데팡스 재즈 콩쿠르는 큰 재즈 페스티벌이고 제 음악을 100% 순수한 재즈라고 하기엔 재질이 독특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을 했죠. 근데 본선에 진출하고 상까지 받으니까 제가 하는 것에 좀 더 확신을 갖게 됐어요. 클래식과 재즈와 한국적인 정서가 막 섞여 있어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죠.”
-이번 프로그램은 어떻게 구성이 됐나요?
“파리에서 연주하는 팀 사운드에 가까운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공연이 될 것 같고요. 제가 최근에 세 곡을 새로 썼어요. 유튜브에도 올리지 않은 완전한 신곡인데요, 새 EP에 실릴 예정이에요. 첫 번째 곡 제목은 ‘다섯 개의 핑크색 음들’이라는 뜻인데 스탠더드 ‘짐(jim)’의 마지막 다섯 음을 가지고 와서 새로 썼어요. 원곡은 짝사랑 마음을 담은 노래인데, 사랑에 빠지면 모든 게 핑크빛이잖아요. 그런 마음을 담은 굉장히 로맨틱한 곡이고요. 두 번째 곡은 아베스 광장이라는 뜻을 가진 곡인데 제가 사는 곳이 몽마르뜨에요. 아코디언 연주자분들도 많고 회전 목마도 있고 복잡한 예술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 동네죠. 그런 풍경을 담아서 집시풍 재즈의 곡을 써봤어요 세 번째 곡은 포르투갈 리스본을 여행을 담은 ‘오래된 파두 클럽’이라는 제목의 곡이에요. 파두 클럽에서 파두 공연을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한국 정서와 상당히 잘 맞고, 한이 서려 있어서 마음을 절절하게 해주더라고요. 오래 활동을 한 여성 보컬 분이 노래하시는 걸 상상하면서 쓴 곡입니다.”
-이번에 전주에서 처음, 고향인 대구에서도 공연해 소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전주도 좋은 도시라고 들어 기대가 되고요. 대구는 신기해요. 왜냐하면 관객으로 오는 분들 중 제가 아는 얼굴들이 있을 텐데 그래서 더 떨리더라고요.”
-1집 음반도 너무 좋았는데 2집는 언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아마도 내년 여름 전엔 내지 않을까 해요.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려고 해요. 피아니스트 친구 빼고는 이번에 팀 멤버를 다 바꿨어요. 콘트라베이스 자리에 노래도 하고 일렉 베이스도 치는 친구가 들어왔고 드럼 자리엔, 월드뮤직을 하는 퍼커셔니스트를 영입을 했어요. 전통악기로 드럼 세트를 만들거든요. 그래서 이 친구의 사운드가 되게 재밌어요. 모던한 기타 스타일의 멤버도 있고요. 저도 이번엔 페달도 쓸 생각이고 신시사이저도 연주할 예정입니다. 1집은 클래식한 사운드 위주의 실내악 같은 음반이었거든요. 이번엔 실험적인 앨범이 될 것 같아요.”
-두 팔 안쪽에 타투가 인상적이에요. 관객들은 보이지 않지만, 모은 씨는 내내 볼 거 같은데요. (그녀의 오른팔 안쪽 손목 근처엔 ‘소명’이라는 뜻의 ‘보케이션(vocatio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그 아래 쪽엔 달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왼팔 안쪽엔 다섯 명이 손을 잡고 원형을 이룬 앙리 마티스의 ‘춤’ 그림이 그려져 있다.)
“소명이라는 말은 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연주할 때 ‘vocation’이라는 글자를 보면 정신이 번쩍 들어요. 달은 왠지 모르겠지만 제가 정말 좋아해요. 제 이름이 모은인데 프랑스에서는 ‘문’으로 발음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싱글 재킷 보시면 달이 항상 들어가 있어요. 마티스의 ‘춤’은 1집에 라 당스(La danse·춤)라는 곡도 들어가 있는데, 제가 마티스를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저희 팀 멤버가 다섯 명이라 그려 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