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민 포스코이앤씨 전 사장이 인천 송도 본사에서 연이은 현장 사망사고와 관련한 담화문 발표에 앞서 관계자들과 사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포스코이앤씨에서 잇따라 발생한 중대재해를 계기로 산업안전 정책의 근본적 전환이 요구되는 가운데,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이 산업안전과 직결될 해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구축하자’, 이것은 노란봉투법과 관련됐다”며 “실질적인 사용자에게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고, 하청이 원청과 대화할 수 있도록 교섭의 문을 여는 것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산업 안전과 관련된 의제”라고 산업안전과 노란봉투법의 관계를 설명했다.김 장관 뿐 아니라 노동계는 물론,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위험을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권한을 현장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부여해야 산업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한다.특히 복잡한 다단계 하청 구조가 뿌리 깊게 내린 건설업과 조선업 등에서 많이 반복되는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구조적 대안으로 노란봉투법의 의미가 재조명되고 있다.유튜브 ‘CBS 김현정의 뉴스쇼’ 방송화면 캡처당장 최근 논란이 된, 포스코이앤씨에서 발생했던 산재 사망사고들만 해도 대재해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현실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단순한 작업 중 사고가 아닌 다단계 하청 구조와 책임 회피 관행이 반복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전국 곳곳이 현장인 건설업계에는 “모든 현장을 원청이 일일이 점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지만, 바로 이런 구조적 한계를 산업안전 정책을 전환할 단초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원청 등 최상위 관리 주체가 모든 현장의 전면에 나서는 대신, 실제 위험에 노출된 하청 노동자들이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면 이를 보고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현행 법제도는 하청 노동자가 원청을 상대로 실질적인 사고 예방 조치를 요구하거나 현장 개선을 요청할 법적 권한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물론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노사 협의체 등이 기존 제도가 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근로자대표조차 원청 관리자 출신이 맡는 경우가 빈번해 실제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따라서 건설현장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바꾸려면 원·하청 간의 책임 관계를 명확히 하고, 위험을 발견한 하청 노동자가 공식적인 교섭, 협의를 통해 문제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노란봉투법의 핵심 조항인 사용자 정의 확대(노조법 제2조 제2항)가 산업안전과 직결된다.개정안은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도,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 즉 원청이 안전, 작업환경, 일정관리 등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하청 노동자와 교섭할 의무를 지게 된다.지난 1일 법사위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여당(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의결했다. 윤창원 기자
이는 하청 노동자들이 산업안전 문제를 원청과 직접 협의하거나, 단체교섭을 통해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단체협약을 통해 안전 문제를 명시적 의제로 설정하면, 기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한계를 보완하고 실질적인 예방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장흥준 교수는 CBS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중대재해의 상당수가 하청 노동자에게 집중되는 현실을 보면, 원청이 실질적인 안전관리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가 명확하다”며 “문제는 위험을 감지하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현장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주어지지 않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현재 산업안전보건법상으로도 원청의 예방 책임은 명시돼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방적 의무 부과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노동조건은 임금뿐 아니라 안전도 포함되며, 교섭 구조가 작동하면 안전 문제 역시 단체교섭의 핵심 의제로 논의될 수 있다”며 “현장의 실질적 위험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직접 작업하는 하청 노동자이므로, 이들이 교섭 구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야말로 사고 예방의 첫 걸음”이라고 강조했다.정부도 이번 노조법 개정과 함께 산업안전 정책의 전환도 공식화하고 있다. 김 장관은 CBS ‘김현정 뉴스쇼’에에서 “(현장 노동자가) 관리의 객체가 아니라 예방의 주체로 패러다임을 바꾸자. 권한을 아래(현장)로 내리도록 시스템을 바꿔야만 산재 왕국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며, “작업자가 위험을 인지했을 때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조치할 수 있는 권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개정안이 통과되면,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시행된다. 노동부는 이 기간 동안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노사 협의체 운영 매뉴얼과 산업별 적용 방안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현장 의견 수렴도 병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