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중증도 피해자 민수연씨가 휴대용 산소통과 연결된 콧줄을 끼고 6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는 모습. 최서윤 기자 “환경부에서 ‘사회적 합의 위한 거버넌스’ 구성을 진행하시는데, 합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환경부가 무엇을 위한 합의안을 도출해낼 것인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가습기살균제 문제 해결위원회’ 김경영 대표)”‘합의’란 명칭 말고 배·보상 명칭을 사용해주십시오”
(노출확인자단체 ‘희망솔루션’ 민수연 대표)”배·보상 ‘합의’는 종국성을 띠고 있다고 봅니다. 피해자들은 아주 민감한 상황입니다. 터무니없는 배상 합의금으로 합의하게 된다면 피해자들은 합의 후에 신규 질환 발생, 기존 질환 악화 등 여러 상황 발생 시 이에 따른 대책도 없고, 그 누구에게 하소연할 곳도 없습니다”(‘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권익보호회’ 이태호)지난 6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 모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유가족 대부분은 환경부가 추진 중인 ‘집단 합의’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환경부는 지난 2월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피해자와 기업, 정부 및 국회가 참여하는 ‘집단합의 거버넌스’ 구축을 제안하고, 국회 중심 협의체를 구성해 합리적인 합의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대법원이 신규 화학물질인 PHMG·PGH의 유해성 심사 및 공표 단계에서 정부의 역할이 미흡했다고 보고 이들 물질을 함유한 살균제 피해의 국가책임을 인정한 데 따라, 정부 책임을 반영한 피해구제가 중요해지면서다.집단합의를 추진하기 위해 환경부는 지난 3월 17일부터 3주간 전국 7개 권역에서 피해자·유족 간담회를 개최해 주요 요청사항들을 파악하고, 4월부터 6월까지는 개별 의견조사를 통해 합의 참여 희망 여부 등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밟아 왔다고 설명했다.지난 5월 22일에는 보도자료를 내고 “전체 조사 대상자 5413명 중 1965명(36.3%)이 설문에 응했으며, 이 중 1655명(84.2%)이 ‘합의 희망’ 의견을 밝혔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나머지 266명(13.5%)은 ‘합의 미희망’, 44명(2.2%)은 ‘기타 의견’이었다.환경부에 따르면, ‘집단합의’는 집단합의위원회에서 제안한 금액의 일시 지급을 쌍방이 합의하면, 이후 구제급여 지급이 종료되고 피해자와 유족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는 효력을 갖는다.6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대표 간담회가 열린 모습. 당정 측에선 김성환 환경부장관, 안호영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심종섭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 박연재 환경부 환경보건국장이 참석했다. 최서윤 기자 ‘가습기살균제 간질성폐질환 피해유족과 피해자 단체’ 대표 김미란씨는 “지금 1867명이 집단 합의에 들어가 있다. 동의한 사람만 1867명인데, 전체 피해자는 8011명이고, 사망자는 1904명”이라며 “과반수도 안 되는 집단합의를 해놓고 이걸 저희한테 적용하겠다는 건가”라고 반문했다.이어 “저희가 지금 반대하는 이유는 반대라고 할 수도 없다. 형평성에 맞지 않게 한쪽 의견만 존중해서 끌고 가고 다른 한쪽은 완전히 배제해놓고 있다”면서 “그렇게 1867명 얘기만 들어주며 5개월을 허비했는데, 남은 6천여 명은 뭐냐”고 토로했다.환경부는 합의를 원하는 피해자를 위해선 합리적 합의제도(적정 합의금 수령 후 피해구제 대상에서 제외)를 마련하고, 계속 치료를 희망하는 피해자를 위해선 안정적 피해구제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공언해 왔다.이런 합의가 이뤄지면 합의 분담금을 납부한 기업에 대해서는 특별법상 추가분담금을 제외하는 등 종국성을 부여하는 성격도 있다.’8.31 사회적가치 연대’ 대표 채경선씨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정부가 국민을 재벌에게 굴복하게 만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거버넌스 만들고 하는 협의체 과정도 종국성을 주장하는 재벌기업에 의해서 이렇게 진행되는 것 같아 무척 속상하다”고 말했다.김경영씨는 “합의는 피해회복을 위한 금전적 배·보상이 포함되고, 생존 피해자들의 지속적 치료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 합의안에 구성돼야 하는 것이지, 배·보상 합의안과 지속적 치료안을 구분해서 가져갈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이대로면 지난 2022년 집단적 합의를 추진하다 무산된 경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시 합의가 무산된 주된 이유로는 합의를 뒷받침할 법·제도의 부재, 합의금 총액에 대한 기업별 분담액 이견 등이 꼽힌다.김경영씨는 “2021년 민간조정이 시행된 해에 간사자격으로 참여한 피해자로서 얘기드리면 당시 도출됐던 합의안은 사실상 도출된 안이지 합의된 안이 아니다”라며 “이번 합의를 진행함에 있어 당시 합의를 기초로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그는 “당시 합의는 국가 책임을 배제했기에 정말 양쪽의 많은 양보가 필요했던 합의”라며 “지금은 2024년 대법원 판례로 국가책임이 명백해졌기 때문에 국가책임이 기업이 요구하는 종국성과 동일시되면 안 된다. 과거 합의를 기초로 하는 안이 마련돼 있다면 그건 폐지되고 실질적, 민사법상 손해배상에 준하는 배·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환경부는 줄곧 가습기살균제 문제에 대해 피해구제, 합의란 표현을 사용해왔지만,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피해자·유족들은 한결같이 배·보상을 언급했다.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발언을 희망한 21명의 의견을 모두 경청한 뒤, “합의기구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건 제가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배·보상이 맞아 보인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기준을 어떻게 하는 게 가장 나은 방법인지에 대해서는 오늘 여러 가지 의견을 주셨고 자료를 주신 만큼 내용을 충분히 파악해서 답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6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단체 대표 간담회’에 참석해 행사 시작 전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 최서윤 기자흔치 않은 2시간여 공개 발언…”李 사회적참사 유가족 간담회에 왜 빠졌나”이날 간담회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취재진과 관심 있는 대중에게 공개됐다. 피해자·유족으로선 흔치 않은 발언 기회에, 언급이 길어지고 때때로 고성이 오가자, 김성환 장관이 진행을 도맡아 질서 있는 발언을 유도하기도 했다.공식 참석자 발언석 뒤에 마련된 방청석에 자리를 잡은 장영숙씨는 “어느 피해자 단체에도 속해 있지 않은데, 워낙 단체가 많고 정보 공유가 안 돼서 도대체 뭘 하는지 경기도 포천에서 보러 왔다”고 말했다.피해자마다 여건과 이해가 다르다 보니,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밖에 없다. 환경부가 인정한 피해자도 피해 정도에 따라 초고도, 중증, 경미 등 5개 등급으로 나뉘고, 미인정 노출확인자도 약 1500명에 달한다. ‘가습기살균제 기업책임 배보상추진회’ 대표 송기진씨는 △다양한 피해자 단체가 있는데 왜 환경부는 소수의 특정 단체를 통해서만 소통하는지 △가습기살균제도 사회적 참사인데 왜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사회적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 초청받지 못했는지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에 왜 구제급여를 받을 공소시한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이밖에도 △태아노출 사망자 피해자 인정(‘희망솔루션’ 민수연 대표) △신뢰할 수 있는 피해 판정(‘환경노출확인 피해자연합’ 박혜정 대표) △코드 부여 등 의료비 지원 시스템 구축 및 절차 간소화(‘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단체 너나우리’ 이은영 대표) 등의 요구와 제안이 나왔다.2025년 7월 ‘제45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 결과. 환경부 제공
김성환 장관은 “실무적 책임을 환경부가 지고 있지만 교육부, 국방부, 보건복지부, 노동부 등이 함께 해결해야 될 사회적 참사”라는 데 공감하고, “특별법이 만들어진 시점은 국가적 책임이 인정되기 전이고 이후 국가 책임이 인정된 취지가 현행법에 반영돼 있는지 여부를 꼼꼼하게 살펴보겠다. 시효문제가 꼭 필요한지도 살펴보겠다”고 답했다.피해자 인정과 관련해서도 “국가의 책임이 인정되기 전에 판단했던 기준이 있을 수 있으니 좀 더 적극 적 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사회적 참사 유가족 간담회에 제외된 데 대해서도 “원인은 확인 못했지만, 대통령께 보고드리고 어떻게 할지 조만간 알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이날 김 장관은 간담회 모두발언에서 피해자들에게 “국가 제1의 책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인데 국가가 세심하게 제도나 내용을 잘 살피지 못해서 피해자분들고 유족분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과 상처 드린 점에 대해 장관으로서 진심으로 피해자 유족분들께 위로의 말씀과 국가를 대신하여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며 사과하기도 했다.국회 안호영 환노위원장도 “국가가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잘 협의해서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이날 간담회는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문제 해결에 입법 과제도 포함되는 만큼, 당정이 협업하는 차원에서 김 장관과 안 위원장 참석 하에 국회에서 진행된 것이다.가습기살균제 피해는 지난 2006년 원인미상의 폐손상 환자가 발생한 이래 2008년부터 정부 원인 조사를 실시한 끝에 2011년에서야 그 상관관계가 규명됐다. 이후 관계부처 합동 대책 수립에 나선 뒤 2014년 7월 환경부의 피해구제가 개시, 구제 신청자 8012명 중 현재까지 5908명이 피해자(구제급여 지급 대상)로 인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