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배우 서수빈(23)은 경력이 전무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는 배우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연기로 대학을 가기로 했고, 코로나 학번이 된 그는 연기를 줌(zoom)으로 배웠다. 신수빈은 “무대 연기보다 카메라 앞 연기를 먼저 배웠다”는 농담을 섞어 그때를 떠올렸다. 2년 간 웬만한 영화·드라마 오디션엔 죄다 도전했지만 결과를 내지 못했다. 그가 처음 합격한 오디션은 현재 소속사에 들어갈 때 봤던 오디션이었다.
신수빈은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2019)을 본 뒤 배우라는 직업에 확신을 가졌다. “많은 대학교에서 윤 감독님 영화를 수업할 때 정말 자주 틀어줘요. 감독님 작품을 보면서 배우라는 꿈을 더 키워나갔습니다.” 윤 감독이 새 작품을 찍게 됐고, 오디션이 열린다고 들었을 때 서수빈은 팬으로서 윤 감독의 영화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기뻤다고 했다. “포기했던 건 아니지만 이번 오디션도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기대를 안 했는데 된 거예요.”
이주인. 서수빈이 ‘세계의 주인’에서 맡은 역할이다. 일단 그는 연애에 관심 많고 장난도 심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평범함 고등학생이다. 그런데 이 발랄하고 명랑한 모습만이 이주인이 아니다. 이 아이에겐 참혹한 과거가 있다. 관객은 일단 조금 헷갈린다. 이주인은 누구인가. 이 소녀는 정말 괜찮은 걸까, 괜찮은 척하는 걸까. 그가 가진 빛과 어둠 중에 어떤 게 진짜 이주인일까. 이제 막 첫 연기를 시작한 서수빈에게 이주인은 버겁기 만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연기는 훨씬 큰일이었어요.”
이주인을 알기 위해 이주인을 공부했으나 연기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부담이 서수빈을 짓눌렀다. 침대에 누우면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고, 이불을 꼭 덮고 자야 했으며, 몸을 뒤척이지도 못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감독님께서 주인이가 얼마나 명랑한 아이인지 상기시켜주셨습니다. 너무 무거워지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어요.” 서수빈은 러닝과 수다로 이주인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제 오만함을 버리고 싶었습니다. 무언가를 대표하지 않고 그냥 주인이가 되고 싶었을뿐입니다. 그렇다고 주인이를 어떤 아이라고 규정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이 영화가 보여주려고 하는 주인이의 순간 순간을 그저 충실하게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그거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 연기, 첫 번째 작품, 첫 번째 영화라는 스트레스는 촬영이 모두 끝난 뒤에도 이어졌다. 제대로 해낸 것인지 확신이 없었다. 무섭고 두려웠다고 했다. “촬영이 끝났으니까 일단 배달 음식으로 제 몸을 망쳤죠.(웃음)” 혈당량이 치솟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말하며 웃는 서수빈은 이주인 같았다. 다시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또 뛰고 수다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까 활기가 돌아오더라고요.”
서수빈 연기는 칭찬일색이다. 처음 하는 것 같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물론 완벽한 연기였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이주인은 베테랑 배우가 맡았어도 결코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다. 서수빈은 극심한 압박 속에서 했던 연기였어도 정말 재밌었다고 했다. “저도 저한테 큰 기대를 안 합니다. 다른 분들이 저한테 무슨 대단한 기대를 하시겠어요.” 서수빈은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늘 감사함을 느끼면서 성실하게 연기해보고 싶어요.”
그는 ‘세계의 주인’으로 꿈을 이뤘다고 했다. 이주인은 태권도로 스트레스를 푼다. 서수빈은 초등학생 때부터 태권도를 했다. 이주인은 친구들과 춤을 추며 장난을 친다. 춤 역시 초등학생 때부터 췄다. 데뷔 전 그는 태권도와 춤을 연기할 때 살려보고 싶었는데, ‘세계의 주인’에서 그걸 다 했다. 서수빈은 연기로 세상이 잘 조명하지 않는 것을 비추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주인이 바로 그런 대상이다. 그리고 윤가은 감독. “심지어 윤가은 감독 작품인 거죠. 전 정말 운이 좋아요. 제가 꿈꿨던 많은 걸 이 영화로 이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