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7)'의 한 장면. *재판매 및 DB 금지[서울=뉴시스] 김종민 기자 =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 인간의 삶과 문화를 담아내는 공간을 창조하는 예술이다. 이러한 건축의 본질과 공간의 의미를 스크린으로 완벽하게 구현한 영화들은 건축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제공한다. 영화 속 건축물은 때로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고, 때로는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며, 때로는 미래 도시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건축가들이 추천하는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금 사유하게 된다.
공간이 캐릭터가 되는 영화들특정 영화 속 건축물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캐릭터로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1927)’: 프리츠 랑 감독의 이 고전 SF 영화는 건축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회자되는 작품이다. 1920년대에 상상한 미래 도시는 계급 사회를 상징하는 거대한 초고층 빌딩과 지하 도시로 명확하게 나뉜다. 웅장하면서도 차갑고 비인간적인 건축물들은 당시 산업화 시대의 암울한 단면과 기술 발전에 대한 경고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달하며, 공간이 어떻게 사회 구조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지 보여준다.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 리들리 스콧 감독의 원작과 드니 빌뇌브 감독의 속편 모두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도시의 건축을 완벽하게 구현한다. 동양적인 색채와 서양의 퇴폐적인 느낌이 뒤섞인 네온사인 가득한 초고층 빌딩, 끊임없이 내리는 비, 그리고 복잡하게 얽힌 뒷골목은 도시가 가진 어둡고 압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곳의 건축물들은 인간과 복제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의 불안감과 소외감을 공간적으로 증폭시킨다.
인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영화들건축은 결국 그 공간을 사용하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다음 영화들은 이러한 인간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인셉션(Inception, 2010)’: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 영화는 꿈속의 건축물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과 심리를 탐구한다. 꿈을 설계하는 건축가는 무한히 변형되는 도시를 창조하며, 공간이 인간의 의식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건축물들은 관객들에게 ‘진정한 공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영화는 특히 건축적 상상력의 한계를 확장하는 데 영감을 준다.
사진 롯데컬처웍스.’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22)’: 박찬욱 감독의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건축 공간을 통해 미묘하게 표현한다. 주인공 형사가 머무는 벽지 가득한 아파트, 살인 사건이 벌어진 산의 경사면에 자리한 집, 그리고 불안정한 관계를 상징하는 다양한 실내 공간들은 인물들의 내면 상태와 서사에 깊이를 더한다. 건축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흐르는 매개체가 되는 좋은 예시다.
건축가의 윤리와 역할에 대한 질문일부 영화는 건축가라는 직업의 본질과 윤리적 고민을 직접적으로 다루며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콜럼버스(Columbus, 2017)’: 이 영화는 현대 건축의 거장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건축에 대한 깊은 사유와 인간관계의 복잡성을 잔잔하게 풀어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아름다운 건축물 앞에서 삶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건축물 자체가 대화를 이끌어내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건축이 인간에게 미치는 정서적, 철학적 영향을 보여준다. 이는 건축가들에게 자신들의 작업이 가지는 의미와 책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건축 영화가 주는 영감건축 영화들은 단순히 시각적인 즐거움을 넘어, 공간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건축가의 역할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에서 재해석된 건축물들은 현실 속 건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넓혀주고, 익숙했던 공간의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건축가들에게 이러한 영화들은 새로운 영감을 제공하고,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하는 강력한 예술적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