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은비 기자 =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이를 증명했다.
요즘 가는 곳마다 케데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수록곡 골든(Golden) 커버 영상 중 누가 인상적인지”, “케데헌 배경지 중 외국인들로 가장 붐비는 곳이 어디인지”, 국중박(국립중앙박물관) 뮷즈(뮤지엄 굿즈) 뭐가 갖고 싶은지” 등을 듣다 보면 새삼 99분짜리 애니메이션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된다.
케데헌을 가장 처음 접한 건 베트남 호치민에 사는 지인의 연락이었다. YG 출신 테디가 곡 작업에 참여했다더니 헌트릭스 노래가 블랙핑크 느낌이 난다고 한 번 들어보라고 했다. 실제로 케데헌 OST를 들은 건 지난 7월 뉴욕 출장에서였다. 삼성 갤럭시 언팩 행사장에 흘러나온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는 외국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쯤되니 K콘텐츠 신드롬을 한국에 사는 나만 모르는 것 같아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케데헌을 몰아봤다. 주인공 눈망울이 옥수수가 되더니 이내 팝콘으로 쏟아지는 모습은 생경한데 익숙한 서울 곳곳의 명소가 나타날 때는 그저 반가웠다. 또 케데헌 한국어 더빙을 맡은 성우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작품 속 디테일을 발견하면서 친근감이 쌓였다.
비단 기자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에 등극한 케데헌은 지난달 말 누적 시청수 2억6600만뷰를 기록했다. 넷플릭스 전체 시청 1위였던 오징어게임 시즌1(2억6520만뷰) 기록을 갈아치운 수치다. 케데헌은 가족 단위 반복 시청이 많아 지난 6월 20일 공개된 이후 현재까지 시청수가 계속 증가해왔다.
국내 미디어 업계에서도 케데헌 흥행 요인을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직접 케데헌을 만들 수 없냐”는 질문에 답할 때는 아쉬움을 넘어 무력감까지 느껴진다.
케데헌 제작비는 최소 7000만달러 이상(약 1000억원) 이상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이같은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는 대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본 사례가 사실상 없다. 제작비 100억원을 넘긴 작품조차 극히 드물다.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이 제작비 전액을 투자하는 구조인데, 미국과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술·인력·경험 등 제작 인프라가 뒤처진 현실에서 검증 없이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손을 내밀지는 미지수다.
다만 케데헌 흥행으로 케이팝 등 한국적 소재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지식재산권(IP)이라는 점은 검증됐다. 앞으로의 과제는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어필하느냐다.
메기 강 케데헌 감독은 얼마 전 내한 기자 간담회를 통해 “제작 과정에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관객 의견만 맞추려고 하는 순간 진정성이 사라진다”며 “한국 문화가 더 글로벌하게 사랑받는 유일한 길은 그대로 자신감 있게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케데헌에서는 한국 고전에 등장하는 ‘저승사자’라는 존재를 영어로 번역하지 않고 고유명사 그대로 사용한다. 사자보이즈가 착용한 조선시대 전통 모자 ‘갓’도 별다른 설명 없이 그대로 갓으로 발음된다. 극중 등장하는 한의원이나 컵라면과 김밥, 설렁탕 등도 마찬가지다.
최근 토니상 6관왕을 차지한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아파트에 사는 유일한 생명체 ‘화분’을 ‘플라워팟’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한국어 그대로 화분이라고 표현한 것과 같다.
이런 장치들은 한국적 소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들이다. 단순 시청을 넘어 시청자가 단어의 뜻과 배경을 직접 찾아보게 만들면서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효과가 있다. 괴물과 같은 위협을 막아내는 할리우드 서사지만 작품 속 디테일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담아낸 케데헌처럼 지역성과 글로벌성을 함께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