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욱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안재욱(53) 주연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가 없었다면, KBS는 연말에 ‘연기대상’을 열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니시리즈는 시청률 1%대를 전전했고, 단 한 편의 흥행작도 내지 못했다. 일일·주말극으로 연명하고 있는데, 요즘도 ‘KBS 드라마는 누가 보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주말극 역시 몇 년간 부진이 이어졌고, 시청률 20%를 넘기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나마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는 40회 최고 시청률 21.9%(닐슨코리아 전국기준)를 찍었지만, 탄력을 받지 못했다. 4회 연장했으나, 54회 20.4%로 막을 내렸다.
“아무리 ‘시청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이 그렇게 되느냐. 20%를 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우리 문화 생활권이 OTT로 바뀌었고, 원하는 작품을 선택해서 보는 데 길들여졌다. ‘주말극 연령층이 높다고 해도 쉽지 않구나’ 싶었다. 감독, 제작사를 많이 쪼았다. ’20~21% 나온 것도 기분 좋지만, 25~27% 나오면 안 되느냐’고 했다. 나한테 자꾸 이 정도 수치도 굉장한 거라고 하더라. 계속 들들 볶았다. 끝날 때 2~3% 더 올라야 하는데, 큰 변동이 없더라.”
안재욱의 KBS 2TV 주말극 복귀는 ‘아이가 다섯'(2016) 이후 약 10년 만이다. 오랜 전통을 이어온 독수리 술도가 오형제와 결혼한 지 열흘 만에 남편 죽음으로 가장이 된 맏형수 ‘마광숙'(엄지원) 이야기다. 안재욱은 LX호텔 회장 ‘한동석’을 맡았다.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2016~2017) 구현숙 작가와 ‘순정복서'(2023) 최상열 PD가 만들었다.
중·후반부로 갈수록 극본 힘이 빠졌고, 시청자들을 끌어 당길만한 요소도 부족했다. 너무 잔잔하게 흘러갔는데, “많이 아쉽다”며 “극본만 보고 ‘재미있다, 재미없다’고는 누구나 할 수 있다. 늦게라도 나온 극본으로 빨리 찍기보다 그 전에 배우, 제작사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미리 상의해 작가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주면 좋지 않느냐. 극본이 나올 때까지 마냥 턱 괴고 있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작가가 중반 이후 많이 힘들어하는 걸 느꼈다. 극본 나오는 속도도 늦어져 혼자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더라”면서 “중반 이후 더 많이 대화를 나눴고, A가 있으면 A+도 생각해 현장에서 계속 의견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벌써부터 시상식을 기대하기 보다, KBS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KBS에 ‘연말까지라도 더 많이 사랑 받는 드라마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말 시상식 때 의례적으로 ‘누구, 누구 받겠네’가 아니라 경합을 벌이더라도 ‘누굴 줘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흥행작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관객없는 공연이 얼마나 초라 하느냐.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건 정말 재미없다는 건데, 방송국 입장에서도 결과가 안 좋으면 ‘드라마 하지 말자’고 할 거다. 최근 드라마가 많이 줄었는데, 굉장히 씁쓸한 현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일터가 없어진 것 아니냐. 좀 더 참신하고 재미있는 작품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안재욱은 엄지원(47)의 중년 로맨스로 호응을 얻었다. “어린 친구들이 사인해달라고 하면 ‘드라마를 보나’ 싶었는데, ‘엄마, 아빠가 드라마에 빠져 있다’고 하더라. 주위에서도 간만에 본 중년 사랑 이야기였다고 했다”면서 “예전엔 풋풋하고 설레는 감정이 우선이었다면, 이번엔 1대1로 생각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만나서 사랑을 느끼고 결혼 과정까지 공감을 얻길 바랐다. 시청자들은 밝게 웃으면서 넘어가도, 연기할 때 깊이감을 주려고 신경 썼다”고 돌아봤다.
“초반에는 서로 데면데면한 분위기를 살렸고, 시간이 흐르면서 가까워져야 했다. 극본에 기본적인 감정선만 나와 있어도 (엄지원과) 상의를 많이 했다. 손잡고 끝나는 신이었는데, ‘한 번 꼭 안아줘야 되지 않을까’ 싶었다. 현장에서 감독님께 제안하면, 열이면 열 받아줬다. 동석이가 리드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광숙을 받쳐주는 역할을 많이 했다. 그래야 좌충우돌 광숙 캐릭터가 씩씩하게 앞장서가는 게 돋보일 것 같았다. 내가 꼭 이끌기 보다 지켜주고 바라봐줬다.”
안재욱은 2015년 뮤지컬배우 최현주(45)와 결혼해 1남1녀를 뒀다. 동석과 광숙이 2세 계획으로 갈등을 보였을 때 공감했을까. 광숙은 임신을 원치 않았으나, 동석이 계속 늦둥이를 원해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청자들도 없지 않았다. “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광숙 입장에서도 마냥 오케이 할 수 없지 않느냐.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받아들였다”며 “동석은 50대 중반이지만, CC와 일찍 결혼해 자녀를 낳은 상태였다. 광숙과 재혼해도 충분히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여건이 됐다”고 설명했다.
회장 역은 처음이다. “초반에 고정으로 찍는 호텔이 있었다. 몇 달 전 촬영에 들어갔는데, 처음엔 그냥 탤런트 안재욱 보듯 ‘안녕하세요’ 하다가 방송 나가고 반응이 좋아지니 회장처럼 느끼더라. 직원들이 걸어가다가도 진짜 회장 대하듯 인사했다”며 웃었다. 실제보다 다소 나이 들어 보이게 나왔는데, “극중 점잖게 보이려고 2대 8 머리 스타일을 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채널A 예능 ‘아빠는 꽃중년’에서 가족들과 일상을 보여줬다. 실제로는 무뚝뚝해 보였는데, 가족 반응도 궁금했다. “딸이 초3이다. 사람들이 우리 엄마, 아빠를 알아봐 줘 묘한 것 같더라. 외식 하러 갔을 때 ‘드라마 잘 보고 있다’고 인사해주니 자기 어깨가 올라가더라. 둘째 아들은 다섯 살이라서 잘 모른다”고 귀띔했다. “아내는 ‘재미있다’ 정도의 반응이지, 내가 한 걸 보고 세세하게 분석하진 않는다”면서 “질투하는 건 없다. 우리는 무대 위에서 껴안고 키스도 하는데, 질투하면 이 일을 하면 안 된다. 동석과 광숙이 안고 뽀뽀하면, 우리 딸이 ‘아빠 뭐 하는 거야’라며 어쩔 줄 몰라 하더라. 아내는 ‘좋냐’고 하더라”며 웃었다.
안재욱은 원조 한류스타다. 최근 한한령이 조금씩 풀리면서 중국 활동에 물꼬가 트였다. “중국에 방문 안 한지 10년이 넘었다. 좋은 인연이 닿았으면 좋겠다”며 “중국 팬들이 한국에서 공연할 때 많이 응원하러 왔는데, 점점 교류가 줄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 드라마도 공식적으로는 중국에서 볼 수 없더라. 응원하고 싶어도 활발하게 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더 나이 먹기 전에 중국, 일본이든 활동할 수 있을 때 하고 싶다. 중국 활동은 많이 아쉽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팬들이 주는 감동의 무게와 값어치가 훨씬 더 크게 느껴진다. 젊었을 때는 ‘내가 이 정도 열심히 하면 사랑 받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였다면, 지금은 ‘이만큼 사랑 받아도 되나’ 싶다. 그만큼 감사함의 깊이가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