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손차민 기자 = 한미 관세협상 후속합의가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 정상회의를 계기로 극적 타결을 이뤘다. 정부는 난항을 겪던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에 대해 최선의 결과를 냈다고 자평한다.
미국이 요구했던 투자액 증액은 피하면서도, 현금 투자분 2000억 달러를 연간 최대 200억 달러씩 나눠 집행하기로 해 외환시장 리스크는 최소화했다.
표면적으로는 최선의 결과를 끌어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완전히 매듭 지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안팎의 시각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합의 내용을 문건으로 확정하기 전까지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지난 7월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됐다는 첫 정부 발표 이후 이번 협의 도출까지 후속 논의에만 3개월이 걸렸다. 이를 감안하면 팩트시트와 양해각서(MOU) 체결이 완료될 때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한미 양국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지만, 3개월이 지난 지금도 반영이 안 됐다. 이번 후속 협의에서 다시 한번 15% 인하를 확인했으나 언제 적용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에서 관련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는 시점을 고려하면 빠르면 이달, 늦어도 다음 달로 예상될 뿐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반도체 품목별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불확실성은 더 커졌다. 우리 정부는 지난 7월에 이어 이번 협의에서도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도록 ‘최혜국 대우’를 재확인 받았다고 강조한다. 다만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산업통상부는 미국이 대만 등 다른 주요국과의 관세 협상을 마무리해야 반도체 관련 조항이 확정된다고 설명한다. 결국 세부 조율에 따라 우리에 대한 ‘최혜국 대우’ 수준이 정해진다는 얘기다.
정부는 한미 정상이 합의한 내용을 명문화하기 위해 관세·안보 분야를 포괄하는 팩트시트를 곧 공개할 계획이다. 산업부도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이행을 구체화한 MOU 문안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양측이 조율한 투자 규모, 투자 형태, 운용 방식, 수익 분배 등이 모두 담길 예정이다.
한미 간의 세부 협의뿐 아니라 국내 절차도 남아 있다. 정부와 여당은 대미 투자 이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미투자 특별법’을 추진 중이다. 외화자산 운용 수익 등을 재원으로 대미 투자를 위한 국가기금을 구성하는 게 골자다.
관세협상 후속협의가 우리에게 불리하지 않게 된 건은 다행이다. 하지만 겨우 큰 봉우리 하나 넘었을 뿐, 합의된 내용을 구체화하기까지는 넘어야 할 능선이 길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