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이근하 배우 (사진=이근하씨 제공) 2025.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구무서 기자 = “비장애인일 땐 주변 사람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장애인이 된 이후에는 내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게 됐죠. 내가 하고 싶었던 연기를 하게 돼 장애 덕분에 나를 되찾고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행복해요.”
지난달 27일 서울 강서구 인근에서 기자와 만난 이근하(30)씨는 저시력 시각장애인이자 배우다.
이근하씨가 장애를 만난 건 20대 중반이었던 군대 시절이었다. 희귀난치질환인 레버시신경 위축증이 찾아온 그는 시력을 잃었고 삶도 바뀌었다.
특히 비장애인으로 입학했던 대학은 장애인이 돼 다시 돌아가니 전혀 새로운 공간이었다. 그는 “걸어서 강의실도 가고 밥집도 찾아가고 했는데 어디가 어딘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됐다. 익숙했던 공간이 낯설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비장애인때 만났던 친구들은 연락이 많이 끊어졌다”며 “나도 내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든 시기였는데, 친구들에게 얘기하기도 어려웠었다”고 했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킨 건 연기였다. 이근하씨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배우에 관심이 있었다. 그때는 학교에서 약간 괴롭힘을 당했는데, 내가 유명해지면 괴롭히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은 연기 학원비도 비쌌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리기가 어려웠는데 장애를 갖게 된 이후부터는 내가 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 어떻게 보면 장애가 내 인생의 큰 터닝포인트가 된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연기자의 길을 택한 이근하씨는 코로나19 유행 시기인 2021년에 관객없이 영상으로 상영하는 연극으로 첫 공연을 했다.
[서울=뉴시스] 이근하 배우(사진=이근하씨 제공) 2025.10.31.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시각장애인인 이근하씨는 대본을 읽을 때 파일로 받아 소리로 변환한 뒤 한 줄씩 듣고 외우기를 반복한다.
그는 “대본 리딩을 할 때 나는 미리 외우거나, 아니면 음성 변환으로 들었다가 뇌를 거쳐 다시 뱉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재밌고 행복하다. 대본을 받을 때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은 역시 부모님이다. 그는 “푸른나비의 숲이라는 작품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나만의 삶을 찾는 시각장애인 역할을 했는데 어머니가 많이 우셨다”며 “부모님은 내가 노력을 많이 했구나,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셨고 나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보여드릴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틈입자’였다. 주인공의 삼촌 역이었는데 출연진 중에 장애인은 이근하씨 혼자였다. 그는 “처음에는 비장애인들과 현장에서 할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고 위축됐었는데 막상 해보니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걸 느끼게 됐다”며 “그 공연으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언어 전달력,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 같은 외모가 특징인 이근하씨는 롤모델로 박정민·이병헌 배우를 꼽았다. 배우로서 청춘시대 등을 집필한 박연선 작가의 작품에 캐스팅 되는 게 목표라고 한다.
연기 연습을 하러 가는 길부터 행복하다는 이근하씨는 장애인에 대한 관심도 당부했다. 그는 “장애예술인이 많다는 것, 전맹뿐만 아니라 저시력장애인도 많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고, 나는 장애 덕분에 나를 되찾아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밝은, 긍정적 영향력을 많이 끼치고 싶다”고 했다.
*이 기사는 한국장애인개발원과 공동 기획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