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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성소의 기자 = “우리나라는 전자정부에 대한 국민 체감도를 대표하는 ‘온라인 서비스’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 받았다.”
지난해 9월 19일 행정안전부가 낸 보도자료의 한 구절이다. 유엔(UN)은 짝수 해마다 전자정부 평가 결과를 공개하는데, 지난해 한국은 온라인서비스 부문에서 193개 회원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종합 순위로 보면 한국은 3위에서 4위로 한 단계 내려앉았다. 물론 이 내용도 보도자료에 포함돼 있었다. 다만 한국이 2010년 이후 14년간 유엔의 전자정부 평가에서 한 번도 3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었다는 사실과 왜 순위가 떨어졌는지에 대한 분석은 빠져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본 정보통신 관련 인프라 수준을 측정한 ‘정보통신 인프라 지수’는 4위에서 6위로 두 단계 하락했고 국민의 교육 수준을 나타내는 ‘인적자본 지수’는 17위에 그쳤다. 그럼에도 정부는 순위가 떨어진 원인보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 타이틀을 홍보하려는 데 더 집중한 듯했다.
지금 와서 행안부의 보도자료 문구가 다시 눈에 들어오는 이유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화재 여파 때문이다.
지난달 26일 국정자원 대전본원 5층 전산실에서 배터리 이설 작업 도중 배터리팩에서 튄 불꽃 하나로 709개의 행정정보시스템이 멈춰 섰다. 그 여파로 온라인 민원 접수 창구인 국민신문고를 비롯해 정부24, 인터넷 우체국, 모바일 신분증, 온나라시스템 등 주요 서비스가 전부 중단됐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라는 표현이 무색한 장면들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각 기관에서는 민원을 방문이나 팩스로 접수하고, 결재 서류도 수기로 작성해야 했다. 지금도 정부 시스템의 약 20%는 아직 가동되지 못 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 20일까지 대부분의 시스템을 복구하겠다고 밝혔지만, 20개 시스템은 복구 시점조차 불투명하다.
우리는 이미 1년 10개월 전 정부 전산망이 멈춰서는 사태를 겪은 바 있다. 지방자치단체 행정 전산망인 새올 행정시스템과 정부 24가 마비되면서 전국적인 민원 대란이 벌어졌고, 당시에도 ‘K-디지털 정부’라는 평가에 큰 타격이 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듬해 정부는 대대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번 국정자원 화재로 그 약속은 빈말이 돼 버렸다.
정부가 강조해온 ‘세게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라는 문구는 더 이상 쓰기 어렵게 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산망 마비 사태를 연이어 겪으며 그 표현은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문제를 원점에서 되돌아 보는 것이다.
성과 자랑에 앞서, 철저한 자기 반성과 뼈를 깎는 수준의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 전산망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일관되게 관리할 수 있는 체계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 중심의 사업에만 투자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정부 전산망을 국가 기반시설로 인식하고 인력과 예산을 꾸준히 투입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정자원 화재와 관련해 “근본적인 보완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4일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산하에 관련 작업을 하기 위한 태스크포스가 꾸려졌고, 다음 달 말까지 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이번에는 정부의 약속이 빈 말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