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기자수첩 이혜원
[서울=뉴시스] 이혜원 기자 = “이제는 해외 시장에서 ‘K’가 붙으면 프리미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수 많은 제품 중 하나일 뿐 그 브랜드를 기억하고, 팬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게 아쉽죠.”
전 세계가 K콘텐츠에 열광하고 있다.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가 글로벌 차트 최상단을 차지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이 거대한 한류 열풍은 자연스레 K상품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으로 이어졌고, 해외 소비자들이 온라인으로 한국 상품을 직접 구매하는 ‘역(逆)직구’는 새로운 수출의 심장으로 떠올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 활성화를 주문할 만큼 그 잠재력은 국가적 의제가 됐다.
하지만 이 화려한 성공의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아마존, 쇼피 같은 거대 플랫폼을 통해 해외 진출에 나서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브랜드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아마존에서 좋은 화장품을 샀다’고 기억할 뿐, 제품을 만든 브랜드의 이름은 쉽게 잊어버린다.
브랜드는 플랫폼의 수많은 상품 중 하나로 전락하고, 결국 가격 경쟁과 광고비 출혈의 늪에 빠진다.
실제 취재 중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열심히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를 하더라도 외국 소비자들이 우리 브랜드를 기억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며 “우리가 어떤 브랜드 인지를 설명하고 알리기 보단, 어떻게든 눈에 띄게 하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했다.
이는 개별 기업의 어려움을 넘어, 우리 수출 생태계가 직면한 ‘데이터 종속’이라는 구조적 위기로 볼 수 있다.
고객 데이터는 플랫폼이 독점하고, 우리 기업은 신제품 개발과 마케팅의 나침반을 잃게 된다.
플랫폼 정책 변경이라는 파도에 언제든 난파될 수 있는 셋방살이 신세인 셈이다.
높아지는 무역 장벽과 플랫폼 종속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이대로는 K제품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해법은 명확하다.
개별 기업이 직접 소비자와 만나는 ‘D2C(Direct to Consumer)’로의 대전환이다.
D2C는 단순한 판매 채널이 아니다. 브랜드의 철학을 공유하고 고객과 직접 소통하며 팬덤을 만드는 베이스캠프이자, 데이터 주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실제로 K뷰티의 신성 에이피알은 자사몰(D2C)을 중심으로 성장해 전통의 강자 LG생활건강 등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K브랜드가 세계 시장과 직접 만날 때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D2C몰에서 충성 고객과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동력 삼아 여러 외부 채널로 가지를 뻗어 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이 전략을 개별 기업의 분투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시스템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통해 ‘1기업 1 글로벌 D2C’ 시대를 열어, 모든 수출 기업이 자신만의 베이스캠프를 가질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할 수 있다.
한류라는 유례없는 순풍이 불고 있다. 이 기회를 타고 단순히 상품을 파는 ‘셀러’를 넘어, 전 세계 소비자들이 사랑하는 ‘K브랜드’의 함대를 키워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