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걸 아린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그룹 ‘오마이걸’ 아린(26) 연기를 기대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이돌이 밟는 전형적인 코스로 보였고, 밝고 상큼한 이미지에만 갇혀 있을 것 같았다. 최근 공개한 웨이브 ‘S라인’은 이런 선입견을 모두 깼다. ‘환혼'(2022~2023)에서 연기 혹평이 적지 않았으나, 이번엔 ‘오마이걸 아린이었어?’라며 놀란 이들이 많다. 대충 자른 듯한 더벅머리에 푸석한 민낯으로 등장했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저주 받은 능력을 비관,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고등학생 ‘현흡’ 그 자체였다.
“‘오마이걸 아린인 줄 몰랐다’는 얘기를 듣고 감동 받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도전하고 연기하고 싶은 원동력이 됐다. 사실 환혼은 나도 잘 못 보겠더라. 부족함이 많았던 작품이지만, 캐릭터를 잘 담아줬고 좋은 경험을 했다. 선배들과 붙는 장면에서 많이 배웠다. 작품을 하면 할수록 현장에서 배우는 게 많다. 낮은 톤이 찰떡이라고? 현흡을 연기하면서 ‘이런 톤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다른 매력으로 보일 수 있구나’ 싶었다. 앞으로 다른 톤도 연구해보겠다.”
이 드라마는 현흡에게 성적 관계를 맺은 사람들 사이 연결된 붉은 선, S라인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진실과 욕망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동명 웹툰 세계관을 확장했다. 2023년 촬영을 마쳤지만, 빛을 보기까지 2년이나 걸렸다. 올해 4월 제8회 칸 국제 시리즈 페스티벌 장편 경쟁 부문에 초청, 국내 작품 중 처음으로 음악상을 받았다.
판타지 스릴러물 도전은 처음이다. 소재, 캐릭터도 평범하지 않아 연기하기 어려웠을 터다. “극본을 처음 받았을 때 기존에 보여준 밝고 사랑스러운 모습과 달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며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이런 모습도 나한테 나올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안주영 감독도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아린이 점점 현흡화되는 모습을 봤다. 아린은 “감독님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다른 모습을 끌어내고 싶었던 것 같다”면서 “애초 현흡의 외적 변화 의견도 확고했다. 머리를 짧게 잘라서 변화를 주고, 메이크업을 통해 캐릭터를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끌어줬다”며 고마워했다. “내려놨을 때 편한 모습이 생각보다 잘 묻어 났고, ‘다른 매력으로 보일 수 있구나’ 싶었다. 외적인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감독님을 믿고 촬영했다”고 했다.
“처음부터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진행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현흡화 된 것 같다. 촬영할 때 자연스럽게 현흡 모습이 묻어 났다. 현흡은 상처가 있다 보니 집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보냈다. 어떻게 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현흡을 생각하면서 목소리 톤, 느낌 등을 기존 나의 모습과 차별화 두려고 노력했다. 조금 더 힘을 빼고 연기하려고 노력했고, 겉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과거 속옷 브랜드 BYC 광고 모델을 맡았을 때 노출을 꺼렸는데, 극중 베드신이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스토리 안에서 현흡 흐름에 맞게 최대한 표현했다. 도전이라면 도전일 수 있지만, 내용과 어우러지게 담아냈다. 현흡으로서 봐줬으면 좋겠다”며 “단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베드신이지만, 엄청 자극적이기보다 흐름상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신이라서 현흡 마음으로만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멤버들은 아직 못 본 것 같다. 그 신 피드백이 없었는데 언니들의 반응이 두렵다”며 웃었다.
현흡은 자신을 짝사랑하는 반 친구 ‘준선'(이광희)한테만 마음을 열었다. 두 사람 사이 S라인이 생겼지만, 준선은 얼마 가지 않아 공사장 철근에 맞아 죽어 허무했다. “현흡은 준선을 통해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자기 편이 있다고 느끼게 된 시점이라서 순수한 마음으로 표현했다. ‘이만큼 웃어야지’라고 생각하기 보다, 현흡이라면 이만큼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제야 마음을 열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준선이 안 좋게 돼 많이 자책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S라인을 볼 수 있는 안경을 소지하고 싶느냐’는 질문엔 “촬영하면서도 상상 하고 배우들과도 얘기했다. 현실에서 그런 안경이 있다고 해도 쓰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런 관계, 상황 등을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모르는 게 약”이라며 “위급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쓰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결말도 호불호가 갈렸다. 안 감독은 시즌2를 염두에 두지 않고 닫힌 결말로 마무리 지었다고 했지만, 열린 결말로 보는 시선도 많다. 아린은 “현흡 시점에서도 조금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싶다. 허탈한 감정이 들었을 것 같다”며 “현흡은 상처도 있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기 무서워 하지 않았느냐. 용기를 가지고 나가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하고 싶었을텐데, 결국 모든 사람이 붉은 선을 보게 돼 슬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마이걸로 데뷔한 지 10년 차다. 2020년부터 연기를 시작했지만, 홀로 인터뷰를 하는 건 처음이라서 긴장한 듯 보였다. 답변 하나 하나 조심스러워 했고, 아직까지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를 충분히 설명하기엔 부족했다. 그래도 S라인은 “나도 보지 못한 모습을 많이 꺼내줬다. 앞으로 많은 도전을 하고 싶다”고 바랐다.
KBS 2TV 수목극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로도 인사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물로, 기존 아린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같은 시기에 두 작품이 나와 감사한 마음이 크다”면서 “워낙 다른 장르의 작품이다 보니, 상반된 매력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칸시리즈에 다녀온 뒤 해외 진출 욕심이 생겼다.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준비를 많이 해 기회가 되면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S라인을 통해 새로운 장르에 도전했는데, 앞으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맡고 싶다. 하나의 이미지만 보여주기 보다, 다양하게 소화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