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박윤서 기자 = 가해자에 대한 처분을 유보하고 피해자들을 징계하는 행태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서 벌어졌다.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협회는 ‘제 식구 감싸기’가 더 중요한 모양새다.
KPGA 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 협회 고위 임원 A씨가 직원 B씨에게 욕설을 일삼았고, 업무적 실수를 약점 삼아 사직 각서를 제출하게 했다고 밝혔다. 또 각서를 근거로 퇴사까지 강요하는 등 괴롭힘을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협회는 A씨에게 무기한 직무 정지 징계 처분을 내렸고, 자체 조사위원회를 꾸려 전수 조사를 실시한 결과 10명 이상의 추가 피해 사례를 확인했다.
그러나 협회는 A씨를 직무에서 전면 배제한 이후 세 차례 이사회를 개최하고도 공식 징계를 내리지 않고 있다.
협회는 지난 11일 침묵을 깨고 A씨의 징계는 유보가 아닌 진행 중이며 합리적인 절차를 밟고 있다고 설명했으나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다.
당장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A씨에 대한 징계를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어느덧 7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노조가 이달에 두 차례 입장문을 낸 뒤 다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그제서야 협회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협회는 A씨에 대한 징계는 뒤로 미뤄둔 채 오히려 괴롭힘에 시달린 직원들에게 일사천리로 해고, 견책, 경고 등 징계 결과를 통보하는 터무니없는 결정을 내렸다.
A씨가 김원섭 KPGA 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지면서 피해 신고자들에게 보복성 징계를 내린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노조에 따르면 징계 사유는 대부분 A씨의 강요로 썼던 시말서의 내용으로 욕설과 폭언, 정신적 위압하에 작성됐으며, A씨가 내부 기안을 반려하거나 예산 전용 결정을 지연하는 등 적절한 업무 환경을 제공받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결국 노조는 지난 15일 피켓을 들고 국회로 향했다. 기자회견을 열고 직장 내에서 벌어진 가혹행위에 대해 증언하고 입장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문화체육관광부에 KPGA 대상 감사 시행을 요구하기도 했다.
협회는 2021년에도 비상식적인 보복성 징계를 내리며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당시 협회는 직장 내 동성 성추행 사건이 도마 위에 오르자 오히려 피해를 입은 직원에게 언론 부실 대응을 이유로 대기발령을 명한 후 각종 사유를 덧붙여 3개월 징계를 내렸다. 직원에 대한 징계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 징계로 판정됐다.
이후 집행부가 교체됐음에도 존중이 결여된 조직 문화는 타파 되지 않았다. 조직 내 뿌리 깊게 박힌 권력 앞에서 직원들의 고통은 장기화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규정대로 처리하지만, 사내에서 권력을 쥔 분들이 부조리와 불법 행위들을 무마하고 있다. 그들은 직원들을 노예처럼 생각하며 하대하고 있다”며 “여전히 낡은 기업 운영 마인드와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A씨의 일부 혐의를 인정해 검찰에 송치했고,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A씨의 직장 내 괴롭힘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판단해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스포츠윤리센터 역시 징계를 권고한 상태다.
피해자들을 외면하고 수개월째 가해자를 감싼 협회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잃었다. 노사 갈등의 골만 더 깊어지고 있다.
협회는 임원 징계와 관련해 조속한 종결을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진정성에 의문 부호가 붙는다. 그저 기약 없는 기다림만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