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재명 정부들어 주요 공약으로 추진돼 온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 제정이 안갯속에 빠졌다. 미국 재계와 의회가 일제히 반기를 드는 가운데, 통상 협상에서도 미 행정부가 온플법을 표적삼으면서 추진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 못이겨, 결국 제대로된 온플법의 입법이 좌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28일 관가 등에 따르면, 소상공인 보호와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온플법 입법이 미국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정부와 여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이 법안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규제를 골자로 한 ‘독점규제법’과 △입점업체의 수수료 부담과 불공정 계약을 개선하기 위한 ‘중개거래 공정화법(공정화법)’으로 나뉜다.하지만 미국 상공회의소와 구글, 아마존 등 미국 주요 IT 기업들이 소속된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는 윤석열 정부 시절부터 한국의 온플법 추진을 정면 비판해 왔다. 이같은 재계의 움직임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의회와 행정부의 직접 개입으로 확산되고 있다.지난 1일 미국 연방 하원의원 43명은 공동서한을 통해 한국 무역협상에서 온플법을 의제로 다루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다. 이어 24일에는 미 하원 법사위원회가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 직접 서한을 보내 “온플법이 미국 기업을 부당하게 겨냥하고 있다”며 정책 방향을 설명하라고 요구했다.연합뉴스이는 동맹국의 주권을 침해할 수 있는 행위로, 내정간섭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온라인플랫폼법제정촉구공동행동’은 전날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관세 협박과 입법 개입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라며 “정부는 외압에 굴복하지 말고 조속히 온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미국 측의 논리는 ‘디지털 무역장벽’이라는 프레임이다. 미 하원은 한국의 온플법이 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중국계 플랫폼 기업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 채 구글, 애플 등 미국 기업만 과도하게 겨냥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국회에서 “특정 국가를 차별하려는 의도가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미국은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압박은 단순한 외교적 요구를 넘어 실제 통상 협상과도 연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미 관세 재조정 협상에서 온플법 입법을 주요 의제로 상정하고, 법 제정을 사실상 보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이날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열린 통상대책회의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통상 협상에서)온플법이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점은 국회도 알고 있다”고 밝혔다. 당정 모두 그 민감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22일 예정됐던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의 공정화법 검토를 다음 달 중순 이후로 연기했다. 민주당 간사인 강준현 의원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한 메시지가 대미 통상 협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정부와 여당에서는 미국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절충안으로 정산주기 규정과 입점업체들의 단체교섭권 등만 담아 공정화법만 입법을 추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공정화법의 핵심인 수수료 상한제는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 등의 앱마켓에 대한 규제로 해석될 수 있어, 통상 마찰을 피하기 위해 법안 조정을 하겠다는 구상이다.하지만 소상공인 보호 대책의 핵심인 배달 앱 수수료 상한제가 빠진다면 ‘무엇을 위한 입법이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애초 법안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배달앱 수수료에 대해서만 상한제를 적용하는 내용으로 온플법이 아닌 다른 법에 규율하는 내용도 검토되고 있지만, 이 마저도 진통이 예상된다. 다른 법에서 규율할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도 달라질 수 있는 데다가 이에 따라 다시 처음부터 논의를 시작해야하는 탓이다.일각에서는 온플법이 좌초되면 국내 스타트업과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통상 협상에서도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온플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이재명 정부 초기 평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