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고홍주 기자 = 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됐을 때 주변은 온통 물음표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물이기도 했지만, 김영훈이라는 이름 세 자 외엔 알려진 바가 없어서 더 그랬다. 지명 당시 휴대전화를 끈 채 새마을호를 운행하고 있어서 뒤늦게 지명 사실을 알았다는 그의 첫 소감은 더욱 신선했다.
그런 김 장관이 취임 일주일 만에 이슈의 중심에 섰다. 매일 전국의 산업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는가 하면 전임 장관들이 20년 동안 손을 대지 못했던 ‘노란봉투법’,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장관 한 명이 만들어낸 성과라고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의지와 김 장관의 평소 철학이 합쳐져 만들어낸 결과임은 분명해보인다.
노란봉투법은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 과정에서 벌어진 노조 파업에 대해 법원이 47억원 손해배상 가압류 조치를 내린 데서 유래했다. 과도한 배상액 청구로 인해 노조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막자는 게 골자다. 법안은 제21·22대 국회에서 격론을 거치면서 모양새를 갖췄고,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입법은 좌절됐다. 여기까지만 보면 노란봉투법 제정은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문제는 속도다. 2025년판 노란봉투법은 지난해 윤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법안보다 더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 수 있는 쟁의 요건에 ‘근로자의 지위’, ‘사업 경영상의 결정’이 들어갔고, ‘사업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도 포함됐다. 불법파업으로 인정돼 손해배상 책임을 지더라도 감면 청구할 수 있고, 배상책임 비율 산정도 기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동안 근로자가 아닌 사람이 가입하는 경우 노조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이 삭제되면서 사실상 모든 일하는 사람들의 단결권도 보장됐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의견수렴은 다양하게 이뤄졌을까? 안타깝게도 형식적인 노사정 만남도, 공청회도 없었다.
“사회적 대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어야 하고, 신뢰를 회복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던 장관 취임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대로는 해외기업들이 다 한국을 떠날 것이라는 재계의 우려가 과도한 것일지 모른다고 해도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로서 이들의 의견도 들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6개월의 시행 유예기간 동안 전문가와 현장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지만, 그 의견 수렴을 법 처리 이전에 할 수는 없었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급할수록 천천히 가라는 말이 있다. 김 장관과 노동계의 주장대로 노동관계법은 급변하는 산업환경을 다 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파업 한번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손해배상 폭탄’을 떠안게 하는 것은 결코 정의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정의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대화와 설득, 조율의 과정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다.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법에 담기 위해서라도 잠시 멈추고 속도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