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송연주 기자 = “공중보건의 수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하면서 전 세계 임신부들을 불안에 떨게 했습니다.”
임신 중 타이레놀(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이 자폐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에 많은 의료전문가들이 토로한 말이다.
해당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파급력은 컸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을 감안하더라도,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동행한 기자회견에서 “미 식품의약국(FDA)이 타이레놀을 임신 중에 사용하면 자폐아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사에 알릴 것”이라고 발표한 걸, 간과할 순 없었다.
타이레놀은 또 어떤 약인가. 1955년에 처음 미국에 나온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이 약은 소아·성인의 해열진통제로 전 세계 누구나 쉽게 사 먹는 약이다. 한국에만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약이 1300여 품목 허가돼있으며, 이름만 들어도 아는 브랜드가 상당하다.
다른 해열진통제와 달리 임신부의 통증이나 발열 증상을 완화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의약품으로 여겨져왔기도 하다.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소비자는 혼란에 빠졌고, 임신부는 겁먹었다.
미국 산부인과학회(ACOG),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의약품청(EMA),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타이레놀 제조사 켄뷰(존슨앤드존슨 분사 기업), 대한약사회 등이 즉각 “이 약과 자폐증, ADHD 사이의 인과 관계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반박하지 않았다면, 혼란은 심화됐을 것이다.
이들의 성명대로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이 자폐아 위험을 높인다는 인과관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근거가 된 2019년 존스홉킨스대의 연구에선 위험 증가 가능성이 관찰됐으나, 보다 대규모로 진행된 2024년 스웨덴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연구에선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관련된 많은 후향적 연구가 진행됐으며, 이를 통해 의료계와 전문가들은 자폐증 위험 증가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임신부가 약을 거부하고 고열을 방치하는 거야 말로 태아에 심각한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생명과 건강에 대한 지도자의 발언은 그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대중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근거 빈약한 풍설에도 쉽게 흔들린다. 사람들 사이에 침습한 불안은 임신부가 고열에도 약을 거부하는 것처럼 더 큰 위험을 만들고, 공중보건을 뒤흔들 수 있다. 말의 무게는 누구에게나 무거우나, ‘수장’이라면 더욱이, ‘과학’에 대해선 더 무게감을 느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