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노조법 2, 3조 개정안)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런데 오히려 바로 이 지점에서 법 시행에 앞서 제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용할 것이냐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성공적으로 현장에 안착하려면 교섭과 관련된 제도, 특히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정비하고, 원청의 ‘실질적 사용자성’을 판단할 기준을 명확히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28일 고용노동부는 노란봉투법 현장지원 태스크포스(TF) 운영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노란봉투법 시행을 6개월 앞두고 관련 TF(태스크포스)를 꾸려 원·하청 간의 교섭방식 등을 검토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노동부는 기존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원하청이 직접 교섭하도록 한 노란봉투법을 현장에서 어떻게 조응할지 고심 중이다. 현행 노조법 제29조 2항은 교섭창구 단일화의 적용 대상을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원래 하나의 사업장에 여러 노조가 있는 복수노조 상황에서 사용자의 부담을 덜고 효율적으로 교섭하도록 돕기 위해 설계됐다.하지만 노란봉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후 이 조항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오히려 교섭권을 제약할 수도 있다. 하청노조가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할 때 원청노조와 교섭 창구부터 단일화 해야 한다면, 사실상 하청노조가 교섭에 제대로 참여할 길이 막히기 때문이다.더구나 하청노조와 원청노조 간에는 조직력, 대표성, 경험 등에서 실력차가 큰 것이 현실이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원청노조가 교섭대표노조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은 현실에서, 하청노조가 동등한 지위로 교섭에 참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노란봉투법의 핵심 취지인 “실질적 교섭권 보장”에 정면으로 배치될 뿐 아니라, 결국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헌법상 보장된 단체교섭권을 제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정희 정책실장은 “원청과 하청의 교섭 단위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있다”며 “하청노동자들의 경우 근로 관계가 열악하다 보니 실질적인 교섭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하청노조에 실질적으로 교섭을 보장할 수 있도록, 여러 방향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2021년 중노위 판단이 해법?…”추가 입법 필요” 의견도연합뉴스노동법학계 일부에서는 중노위의 과거 판례를 중심으로 이미 해법이 마련됐다고 주장한다. 하청노조가 활동하는 사업장 단위에서 창구 단일화를 거쳤다면, 원청과 교섭할 때 따로 단일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교섭할 수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적용 대상을 노조 조합원이 실제로 일하는 하청 사업장으로 해석하는 접근법인데, 이같은 해석은 현행 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하청노조의 실질적인 교섭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실제로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2021년 현대제철 사건(중앙2021부노268)에서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가입한 노동조합이 하청사업이라는 교섭단위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쳤다면, 이는 노동조합법이 요구하는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교섭대표노동조합은 원청 사용자에게도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판정은 하청노조가 독자적 단일화 절차를 거쳤을 경우, 교섭대상을 원청까지 확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박귀천 교수는 “하청 업체 간의 교섭단위를 통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방안”이라며 “하청 노조들이 교섭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지, 원청노조와 창구 단일화나 원청을 상대해서 교섭 단위를 분리하는 절차를 또 밟게 하는 것은 입법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다만 이러한 해석을 정례화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 법률의 문언으로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어서, 노동위원회나 법원이 일관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채 판단하면 현장에서는 오히려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구체적으로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적용 범위와 예외 사유를 명확히 보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하청노동자에 대해서는 창구 단일화 예외를 인정하거나, 초기업 단위에서 교섭단위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인제대학교 법학과 박은정 교수도 “교섭 단위를 노동위원회에서 정해주거나, 아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용자 범위를 확정해 교섭 의무를 부여하는 방식도 논의되고 있다”면서도 “원하청 관계에서의 단체 교섭에 대해서는 창구 단일화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식으로 방향을 제시하는 추가 입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2020년 안호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의안번호: 2104441)에는 이러한 제도적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해당 법안은 “여러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산업이나 업종의 유사성, 근로조건의 유사성, 노동조합의 조직형태, 지리적 근접성,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하여 교섭단위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중앙노동위원회는 노동관계 당사자의 양쪽 또는 어느 한쪽이나 고용노동부장관의 신청을 받아 교섭단위를 통합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이 개정안은 초기업 단위 교섭을 제도화하기 위한 실질적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평가됐다. 기존의 기업별 교섭 중심 구조만으로는 복잡한 하도급 구조 속에 묻힌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사용자성 판단 기준도 쟁점…”중노위, 행정적 조정 적극 나서야”연합뉴스실질적 사용자성 판단 기준 역시 주요 쟁점을 꼽힌다. 개정된 노조법은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 결정하는 경우 사용자로서의 지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실제 판단 기준은 사례나 교섭 항목마다 달라질 수 있어 혼란이 예상된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임금, 복리후생, 근로시간 등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는 사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일관된 기준 없이 판결이 쌓이면 혼란이 더 커질 수 있다.기업들이 ‘실질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피하려 하청 노동자와 간접적 관계만 맺는 척 하고, 지배력을 숨기는 노무 관리 꼼수를 찾을 가능성도 높다. 과거 불법파견 판정 기준이 정립됐을 때도 기업들은 불법 파견을 포기하는 대신, 이른바 핵심 판단 요소를 피하려 노무 구조를 뜯어고쳤던 전례도 있다. 이럴 경우 사용자성을 입증하기 어렵도록 노무 관리 구조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 원하청 간 소통과 교섭을 활성화하려는 제도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이를 방지하려면 노동위원회가 단순한 판정 기구를 넘어, 조정 단계에서 사용자성 판단을 보조하고, 노사의 교섭을 유도하는 적극적 행정기능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조정 절차에서 법리 판단을 보완할 수 있는 소위원회를 구성하거나, 사용자성 판단에 특화된 행정 역량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박귀천 교수는 “노동위원회가 판정 방식만이 아니라 조정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법적 분쟁이 일어나기 전에 행정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다”며 “사용자가 부당노동행위 등 법을 위반하기 전에 노동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설명했다.이어 “현재 여건에서는 조정위원 몇 명이 열흘 안에 법리적 검토까지 해가며 조정하는 일이 물리적으로 힘들다”며 “가칭 ‘사용자성 판단 소위원회’를 만들어 행정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