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 구무서 기자 = 이번 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앞두고 온 사회가 요란이다. 정부는 관공서와 기업체 등에 출근 시간을 오전 10시 이후로 조정하도록 협조를 요청하고 수험생 등교 시간대에는 수도권 지하철 운행 대수가 늘어난다. 수능 날에는 곳곳에 경찰들이 수험생 이동을 위해 배치되고 듣기 평가 때문에 항공기·헬리콥터 이착륙 시간도 조정된다. 이 시험 문제를 내는 출제위원들은 약 한 달을 감금되다시피 하다가 풀려난다.
자격시험 성격의 바칼로레아로 유명한 프랑스에서도 소위 엘리트 교육기관 진학을 위해서는 우리만큼 치열한 그랑제꼴 시험을 여러 번 보지만 온 사회가 비상이 걸리지는 않는다. 평생 1번만 시험을 볼 수 있는 독일 아비투어(종합 시험) 역시 마찬가지다. 수험생이 1000만명을 넘는 중국의 가오카오를 위해 일부 성급 단위에서 관공서 출근 시간을 조정하는 사례를 제외하면 대학 입학시험에 사회적 역량이 집중되는 경우를 찾기 힘들다.
과도한 입시에 대한 관심과 경쟁은 우리 사회 고질적 문제 중 하나다. 최근에는 교육 경쟁이 조기 시작돼 ‘4세 고시’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는 공부 잘하는 약으로 둔갑했다. 몇몇 아이들은 교육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이유만으로 행복과 자존감마저 잃어버리는데, 우리나라의 높은 청소년 자살률은 이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그간 정부가 손 놓고만 있던 건 아니다. 공론화를 통해 입시 전형 비율을 정해 보기도 하고 수능의 출제 범위와 과목을 조정하기도 했다. 킬러문항도 배제해 보고 상위권 병목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계약학과나 무전공도 도입해 봤다. 그럼에도 입시 경쟁이 완화됐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 교육계 인사는 “결국 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몇몇 요소를 조정하는 게 아니라 수능과 내신,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수월성 교육과 평등 교육 등 입시 제도를 관통하는 여러 개념을 논의하고 중지를 모아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국가교육위원회가 설립됐지만 둘로 쪼개져 2년간 표류하다가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이 번번이 미뤄졌고 리박스쿨과 금거북이라는 결정타를 맞고 치명상을 입었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도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통해 상위권 병목 현상을 일부 해소하겠다는 것 외에는 입시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긴 구체적인 정책 과제를 찾아보기 어렵다.
올해 전면 도입돼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고교학점제 역시 근본적인 문제는 입시와 연결되지 않는 제도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지만, 입시 제도를 어떻게 바꾸자고 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표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관심이 없다”, “입시는 백약이 무효하다”와 같은 말이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19살 나이에 인생의 명운을 쥔 시험을 치르기 위해 고사장에 들어서는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대로 있을 수 만은 없지 않은가. 마침 새 정부도 들어섰고 국가교육위원회도 2기가 닻을 올렸다. 교육계 새로운 리더십이 학생 고통은 덜고 행복은 높일 교육과 입시 제도 마련에 힘을 쏟길 바란다.